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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tishu Aug 23. 2024

유학을 결정하다

대학수험의 실패...그리고 새로운 선택지...

경상북도 김천.

인구 약 13만에 달하는 작은 도시이다. 어렸을 적에는 시골에서 해외에 나가는 일은 잘 없었다.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라는 말을 믿을 정도로 해외는 미지의 세계였다. 집안 형편이 좋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해외여행을 보내주셨다. 그 여행은 '걸'스카우트의 패키지 일본 여행이었다.(당시 형과 나는 '보이'스카우트이었다.)


'걸'이든 '보이'든 어찌 되었던 첫 일본 여행은 규슈 여행이었다. 후쿠오카 → 쿠마모토 → 나가사키 →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으로 돌아다녔다. 스페이스 월드라는 놀이공원에서 일본 성인식도 보고 쿠마모토에 있는 아소산에서 화산가스냄새도 맡아보고 나가사키에 있는 글램핑장에서 놀면서 처음으로 초밥도 먹었다.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은 엄청 친절하게 웃어주고 거리도 깨끗했기에 어렸던 시골아이에게 일본은 좋은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좋았다.


시간은 지나 시골아이가 고3이 되고 대학수험에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해 재수를 했고 나약한 과거의 나는 재수를 성공하지 못했다.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3수를 하는가... 아니면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가... 사실 둘 다 싫었다. 재수를 하면서 난 꾸준하게 공부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자기 분석이 되어있었고 지방대는 술만 마시다가 졸업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기 싫었다.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재수를 했는지... 참... 과거의 나란 아이는....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새로운 선택지는 멀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재수하기 2년 전 형이 일본 대학에 유학을 갔다. 어렸을 적에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한 나라.....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이 새로운 선택지라고 생각한 나는 부모님께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형이 이미 가 있는 상태이기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부랴부랴 일본 대학교 2개의 준비를 시작했다. 한 대학은 형이 재학 중인 대학이었고 또 다른 대학은 후쿠오카에 있는 대학이었다. 



두 대학 모두 수시전형으로 고3 성적과 면접보고 합격여부가 결정이 되었다. 형이 재학 중인 대학은 일본어와 영어 중 한 언어를 선택해서 선택한 언어로 면접을 보는 형식이었고 후쿠오카에 있는 대학은 일본어로 면접을 보는 형식이었다. 일본어에 대해 1도 모르는 나였기에 후쿠오카에 있는 대학은 대충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대충 준비했다. 형이 재학 중인 대학은 몇몇 지인의 도움으로 작년 합격자들이 면접 때의 질문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질문과 따로 준비한 예상 질문과 답을 영어로 A4용지 10장 빽빽하게 적고 내용을 달달 외워서 준비를 했다. 그렇게 대학교의 면접날이 다가왔다.


그 당시에 나는 간절했다. "3수 싫어, 지방대 싫어"였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간절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간절함이 긴장감을 주고 긴장감은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준비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준비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는 떠듬떠듬.. 물어보는 질문은 동문서답.. 결과는 뻔했다. 형이 재학 중인 대학은 불합격...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남은 후쿠오카에 있는 대학은 준비를 크게 하지 않았기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면접에 들어갔다. 이게 웬걸... 긴장을 1도 하지 않은 면접이어서 일까... 일본어가 솰라솰라 나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면접 질문은 영어로 준비했던 면접준비 내용에서 나왔었다. 일본어로 준비를 못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냥 한국어로 당당하게 면접에 응했다. 면접관도 중간부턴 그냥 한국어로 질문을 했다. 일단 질문에 대해서는 끝까지 답했고 그렇게 면접이 끝이 났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가고 싶어서 엄청 준비한 대학은 불합격, 그냥 슬렁슬렁 준비한 대학은 합격했다. 합격한 대학이 크게 좋은 대학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놀아도 해외에서 놀면 언어 하나는 배워온다'라고 하시면서 합격한 대학에 가도 좋다고 해주셨다. 그렇게 시골 아이의 일본 유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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