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걷기
햇살이 바늘같이 따가웠다. 땅이 달궈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다. 헌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예보에서 보았던 장마전선은 아직 남쪽 나라 밖에 있었다. 하늘을 보니 한동안 더워질 태세가 분명했다. 아내와 나는 버스에서 내려 학교 담장을 끼고 걸었다. 오늘 아내는 팔꿈치 근처에 몹시 아픈 주사를 맞았다.
“주사 맞다가 기절할 뻔 했어.”
아내는 말할 기운도 없어보였다. 나는 아내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나나 아내나 요즘 들어 몸이 부쩍 둔해졌다.
“우리 십 년쯤 뒤에는 얼마나 힘들어질까.”
아픈 팔을 추스르며 아내가 말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느려지겠지.”
십 년 뒤에 나는 일흔 일곱, 아내는 일흔셋이 된다. 십 년 전에는 내가 쉰일곱, 아내가 쉰셋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의 세월이 빈대 뛰듯 하는 게 매정하기 그지없다.
학교 담장을 타고 주황색 능소화가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접시꽃 줄기도 여럿 보였다. 잡초 사이를 헤집고 나온 담쟁이 줄기가 울타리를 훌쩍 덮었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풀꽃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갔다. 영근 풀꽃과 해맑은 풀잎이 카메라에 가득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웠다. 우리는 한껏 게으른 걸음으로 담장 옆을 지나갔다. 걸음이 느려지니 보이는 것들은 더욱 또렷해졌다. 세월이 흘러 더 느려질수록 사물은 훨씬 더 자세히 보일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