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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25. 2024

윤사월(閏四月) 이야기

박목월 시 감상

   윤사월

             박목월(1916-1978)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1946년 발표)

 봄이 무르익은 윤사월,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송홧가루가 연기처럼 날아오릅니다. 하늘은 봄기운에 젖어 푸른 안개를 머금었고 외딴 봉우리 아래로는 숲 사이 좁은 길이 보일 듯 말 듯 이어져 있습니다. 숲은 그림자조차 진초록입니다. 시간은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묻혀 더디게 흘러갑니다. 나무 숲에선 꾀꼬리가 웁니다. 

 외딴 봉우리에 있는 외딴 집에는 눈먼 처녀가 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노란 송홧가루도, 푸른 안개도, 진초록 나뭇잎들도, 파란 하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윤사월 산중은 갖가지 빛깔들로 가득하지만 그 화려하고 눈부신 세상을 그녀는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더 어둡고 적막한 세상입니다.

 윤사월 어느날의 화사한 날빛을 그녀는 오로지 새 소리로만 헤아릴 뿐입니다. 그녀가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는 것은 꾀꼬리 소리이자 산과 나무와 풀과 꽃들에게서 우러나오는 세상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소리입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녀에게 세상은 늘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애타게 그리운 대상입니다.  바로 보지 못하고 내내 엿들을 수밖에 없는,  안타깝고 처량한 공간입니다.  

무르익은 봄날과 산지기 외딴집의 눈먼 처녀는 지극히 대조적인 이미지입니다. 봄날이 이렇게 한없이 적막하고 애달프고 가슴 저리게  서글플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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