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곳
내가 살던 미국 동부 한 곳 우리 동네에만 한국 이민자들이 2000년 그 당시 3만 5천 명이 들어와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전주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을 합치면 엄청 많은 분들이 한국을 나와 살고 있는 것이다.
애국자들이다. 정말 몸과 발로 뛰어다니면서 개척해 가며 열심히들 사는 덕분에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전에는 한국이란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알아도 South Korea는 전무였다. 백화점, 가전매장 어디에나 모두 도요타, 미쓰비시, 닛산, 소니 등등 거의 일본 제품만이 최고로 인정하며 장악하고 있다시피 했다.
아시안이라 하여 미국 사람들이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라고 물어볼 때 한국을 모르니 무시하였고, 일본이라고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상냥하게 대하면서 인정해 주던 분위기였다.
2000년 이전만 해도 한국을 많이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어이없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그때는 개발도상국이란 이미지와 함께 약간의 무시와 인종차별적 대우를 겪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았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 K-Pop과 함께 세계만방에 한국의 위상이 올라와 있고 널리 알려져 어디든 한국 문화나 음식, 가전제품, 자동차 각 분야까지 일본보다는 당당히 앞선 선진국 대열에 선두주자로 우뚝 자리 잡고 있어 너무 좋아져 있지만, 2000년 이전엔 한인 사회 모두가 힘들고 외로운 타국 생활 과정에서 한인들의 소통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이 한인 교회 위주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일이면 거의 한인 교회로 모여 서로 얼굴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고 궁금했던 한 주간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무엇보다 그리운 고향을 찾아온 듯 같은 동족이란 명목 아래 편안함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 같았다. 신앙생활이 없던 사람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찾아와 어울리면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고 달랠 수 있었던 곳이다.
신앙의 믿음도 중요했지만, 교회 안으로 스며드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서로가 믿음으로 이끌어주면서 의지하고 의기투합하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보듬어주고 격려해 주며 허한 마음을 채워주었던 고향 같은 한인 교회들이다.
언제든 항상 열려있고 반겨주던 곳. 누구든 같은 민족애를 느끼면서 똑같은 감정을 소통하고 소중한 위로를 나눌 수 있던 곳. 타국에 살면 마음에서부터 찐한 누구나 애국자가 되어 사는 기분이다. 우리나라가 있다는 게 뿌듯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었으나, 몸은 방랑자 삶을 살면서 내 조국, 내 민족, 내 가족의 염원을 담은 기원은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할 것 같았다.
신앙의 믿음과 소망을 품고 사랑으로 가득 채워준 교회. 인간의 나약함을 성전 안에서 거듭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하고 또 나누기도 하면서 서로서로 삶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공간 속에 위로가 되었던 한인들의 애환이 묻어가는 곳. 그냥 모두가 가족이었다. 한인 교회는 모두의 마음속 내 고향집. 탕자들이 돌아갈 집합소가 되어줄 것이고, 언제든 기다려줄 아버지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