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고와 은혜
어느 한겨울, 그해는 유난히도 겨울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출근을 서둘렀다.
내가 살던 미국 동부 쪽은 겨울엔 눈이 소복이 자주 내린다. 보통 출근길은 한 시간 전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어김없이 일찍 서둘러 출근하곤 했다. 서울처럼 좁은 길은 없어도 도로가 미끄러우니 천천히 서행이 이어져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걸리곤 했다.
이날도 밤새 눈이 내려 온 동네가 아름다운 겨울왕국으로 변해버렸고 잠시 멋진 주변 모습에 감동 빠져들게 했으나 "와~ 출근할 수 있을까?" 고민되었지만 결국 출발 결심과 함께 움직여 보기로 했다.
물론 도로엔 어김없이 염화칼슘 차가 바쁘게 움직여 큰길은 거의 녹은 상태였지만,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은 금방 차선을 삼켜버리고 있어 서서히 거북이가 되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 평소 충분히 가던 길이 두 시간 이상 걸려 거의 도착점에 이르렀을 때 인터체인지 하나만 돌면 바로 가게 앞에 닿을 수 있는 위치.
저 멀리 인터체인지 밑에 하나둘 차가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여 나 역시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옆으로 기울며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다. 핸들을 반대로 돌려봐도 그냥 밑으로 자꾸 떠밀리듯 언덕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멈췄다.
겨울에는 항상 차에 눈삽을 싣고 다니기에 눈을 파헤치며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깊이 빠진 눈 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보험회사에 구조 요청을 했으나 5시간 이후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상황.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도심 속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폭설이라 누구랄 것도 없이 이곳을 지나는 차 모두가 언덕 밑에 박혀가고, 춥고 계속 내리는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쉽지 않을 것 같아 당황하고 말았다.
평소 좋은 날에 보았던 평지 같았던 길이 이렇게 깊은 줄 그날에서야 알았고, 구원의 손길이 오기 전 얼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 몇 시간이 흐른 뒤 멀리서 커다란 트레일러 한 대가 지나가던 중 위험했던 나를 발견해 도움 주러 다가와 그 깊은 웅덩이에서 끌어올려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생명의 은인, 천사가 날아와 준 듯 기뻤고 "괜찮냐"는 물음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며 이제 살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도 상관없었을 일이었을 텐데 너무 고마웠던 사건이었기에 조그만 감사의 사례를 하고, 힘들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기진맥진해져서 오후 늦게 가게로 돌아오게 됐다. 이런 날은 출근하지 말았어야지 후회하였고, 그날 오후 또다시 그 길을 보고 싶지 않아 먼 길을 돌아 집으로 향해야만 했던 폭설이 내리던 날. 자연기후 재난의 위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찔했던 트라우마가 지금도 눈이 오면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 이후 인터체인지만 보면 눈두렁에 빠져 눈 속에서 죽을 뻔하다 구사일생 구해주셨던 트레일러 미국 기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늘 생각나게 한다.
자연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한순간에 잃게도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었고, 인간은 자연 앞에 아주 작은 먼지처럼 쉽게 무너지고 없어질 수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해 주었던 미국에서 살던 삶의 한 순간이었다.
요즘도 눈이 내린 길 가다 긴 인터체인지 비슷한 곳만 보면 눈두렁에 빠져있던 아찔했던 그날이 기억난다. 이후 하얀 눈이 이쁘다는 생각을 안 했다. 겨울왕국의 현실은 혹한 내내 긴장하게 해 주었고, 자연의 흐름과 순리를 잘 섭렵해서 따라가도록 지혜롭게 삶을 영유하면서 안전 위주로 늘 최선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자연아~ 내 맘을 다 알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