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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Dec 15. 2024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할매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피어난 순수한 미소

팬지(Viola Tricolor)는 작고 여린 모습이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순수한 미소와 고단했던 삶이 떠오르면서, 팬지의 작은 꽃잎 속에 담긴 강인함과 순수함이 어우러진 듯합니다. 마치 마음속 깊이 감춰진 추억의 조각들을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어르신의 모습처럼, 팬지는 작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울립니다.



24.


"선생님~~ 배고파요 선생님~~"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마다 무조건 달라 하시고 드시겠다 부르시며 조르시는 여자 어르신이시다. 침상에서 내려오시면 무조건 아기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려고만 하신다. 물론 걸어서 다닐 줄도 아시는데 아기처럼 우는 소리로 잉잉 흉내 내시면서 징징거리시는 치매가 오셨다. 


그 옛날 정말 세 살 네 살 어린 아기가 되어있으시다. 식사, 간식 외 이것저것 끝없이 드셔도 계속 배고프다 하시는 어르신. 소대변을 가리지 못하셔서 기저귀를 사용하신다. 선생님을 부르시며 우는 소리로 그렇게 매일 먹는 것에만 집착하시는 여자 어르신께서 영락없는 네 살 어린아이 행동과 똑같았다.


휠체어 이동 도움으로 침상 밖을 나오시면 내려와 네발로 다시 기어 다니려 하시고, 다른 어르신이 먹는 것을 보시면 쫓아다니며 얻어 잡수시려고 집착하신다.


"어르신~~ 이렇게 너무 많이 드시면 배가 아프니 이제 그만 드시고 우리 운동 좀 할까요~~ 네~?"

잉잉~ 고개 흔들면서 손사래 치시며 싫다 거부하시다 또 우신다.


"운동 한 번 하고 오시면 과일 깎아 드릴게요." 조건을 걸어본다. 우는 소리하면 아무것도 못 드린다는 등 조건으로 운동하시도록 도우고 노래교실이나 다른 프로그램 활동 등으로 집착을 분산시켜 드리면서 집중, 정서 안정에 신경 써 드려 본다. 한결 좋아지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종종 말동무해드리면서 관심드리는 만큼 안정을 찾으시는 것 같았다.


바쁜 가족과의 생활 중 혼자 지내셨던 동안 정서적 불안이나 우울 증세가 심하셨던 것 같다. 처음 오신 날은 너무 불안 증세가 심하셨던 분이 서서히 웃음도 찾으시고 묻는 말에 대화도 잘하시고 먹는 집착도 수그러드시고 한결 편안해지셨다.


"어르신~ 누구세요~? 이름이요~?"


"몰라... 몰라~!"


정말 모르시는지 모르시는 척하시는지 모르신다는 말씀만 하신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셨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 기억이 없다. 너무나 애처롭고 정말 아기처럼 순수하신 네 살 어르신이시다. 기분 맞춰드리고 눈 맞춤 해드리며 장난 걸어드리면 함박웃음과 해맑음으로 귀여움이 더하셨다.


세상 세파에 시달리며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은데 정신적 과부하가 오도록 너무나 힘겨우셨던 건 아닐까. 한평생 맘 졸이며 사신 듯, 순간순간 제정신 돌아오면 밭매고 거둬들인 것 상하기 전 내다 팔아 애들 보태줘야 하신다는 속마음을 비치신다. 


연로하신 당신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시면서 네발로 기어 다니려 하면서도 깊은 마음속 안에는 아직도 내 새끼 먹일 것, 가족 걱정으로 불안해하시니 곁에서 보는 내내 우리네 어머님들 삶의 일부분을 보는 것 같아 또 마음이... 가슴이... 먹먹히 아려왔다.


어르신 마음 안에는 무엇으로 담겨 있을까~? 어떤 것으로 채워 드려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마주하며 두 손잡고 하나, 둘, 하나, 둘. 한 발짝, 두 발짝 아기 걸음마 때듯 발맞춰 걸으며 마음속 얘기 꺼내 보지만 역시나 마음 안에 기억은 모두 잃어버린 것 같고 오직 희미한 삶의 기억 중 하나, 가족이란 끈을 잡고 있는 걱정뿐이시고 밭매고 거둬 팔아야 한다는 말씀뿐이셨다.


당신 몸은 허물어져 세울 수도 없어 보이는데 기억마저 모두 사라지고 지워져 버리는데, 하루하루 힘겨운 날을 맞이하시는 네발 어르신. 항상 업어드리고 싶은데 그 작은 체구에서 힘겨운 세월 이겨온 만큼, 이제는 하얗게 지워버리시고 다시 태어난 아기로 거듭나셔서 이제부터라도 행복이란 둥지 안에서 새 인생길 한 걸음, 두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시길 소원합니다. 사랑스러운 어르신, 조금만 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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