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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Dec 20. 2024

노인회장 할배

그리움과 자부심 속에서 길을 찾다

파란 양귀비(Himalayan Blue Poppy)는 고요하고 단단한 고산지대에서만 피어나는 희귀한 꽃으로,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회장님의 삶과 닮았습니다. 어르신의 단단한 책임감, 그리고 한평생 간직해온 고향과 정에 대한 그리움은 고산지대의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양귀비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난 고향에 대한 열망은, 마치 양귀비가 고난 속에서도 빛나는 파란 꽃잎으로 자연을 물들이는 것처럼 강렬하고도 섬세합니다. 다음 생에는 그의 고향에서, 더 자유롭고 평화롭게 피어날 꽃처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5.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신 듯 걸걸한 목소리가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 나와 다른 어르신들과 담소 나누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호탕하시고 서글서글하신 성품을 지니신 남자 어르신께서 새로 입소하신 지 얼마 안 되셨던 날들이다. 


거의 하루 종일 거실에 나오셔서 여러 어르신들과 거리감 없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실 때, 고향은 이북 황해도, 1.4 후퇴 때 남쪽으로 오시게 되셨다며 말투까지 이북 어조로 말씀해 주시는 어르신께서는 당신이 자수성가하셔서 자식들 잘 키우고 당신 동네 이북 5 도민 대표 노인회장만 십수 년 동안 하셨다는 자부심을 치켜세우시며 다른 어르신들 앞에서 힘주시고 폼 나게 늘 큰소리치신다.


그런데 그 어르신께서는 이제 몸 전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으시고 치매까지 있으셨다. 자꾸 길에서 오다가다 넘어지셨는지 얼굴이나 몸 여기저기에 멍 자국이 남아 있으셨고, 오래전 일만 기억하시며 당신은 무척 바쁜 사람인데 이곳에 모셔다 놓은 아들 가족을 원망하시면서 다시 집에 가야 한다며 수없이 가족에게 전화를 거시며 힘들게 하시지만, 가족 누구도 받아주지 않으니 경찰에 신고하셔서 하루면 몇 번씩 112 신고로 경찰이 다녀가기도 한다.


나중에는 치매 어르신이란 것을 알았고, 전화기를 가족이 회수해 가버린 이후는 더 버럭버럭 화내시면서 "노인회장이 여기 있으면 운영할 책임자가 없어서 안 된다" 하시며 보내달라는 소리만 하셨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족 동의 없이 보낼 수도 없는 상황. 달래고 안정을 취하시도록 도움을 드리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매일 하루 종일 떼쓰시고, 나중에는 막 욕까지 하시면서 울분을 토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은 포기하신 듯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평소대로 허허 웃으시면서 걸쭉하고 호탕한 성품으로 돌아와 다른 분들과 담소 나누시고, 선생님들께도 농담까지 건네시며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치매로 인해 한 번씩은 집에 가셔야 한다는 기세가 올라오셔서 한 번씩 요란스럽게 들고나셨다. 갑자기 주거 환경이 바뀌어서 낯설다 보니 더 불안하시고 적응하시기 답답하셨던 것 같았다. 누구나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힘들어하신다. 여자보다는 남자 어르신들께서 활동성 때문에 답답함을 못 견뎌하신다. 물론 익숙한 집만큼 좋은 환경이 있을까...


그러나 밖에서만 활동하시던 분이라 당신이 치매라는 것을 인지 못하시고 돌아다니시다 보니 위험하고 집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며 가족들을 힘들게 하시니 요양원으로 모셔오신 것일 텐데 본인은 이런 상황을 인정을 안 하시고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신다. 인지지능이 떨어지시다 보니 동네 위치나 이름도 모르시고 가족이나 자녀들 이름도 잘 기억 못 하시면서 자꾸 밖으로 노인회관 일 보시는 곳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으셨다. 그동안 평소 너무 중요한 직분으로 책임감 있게 임무 수행하시며 사신 것 같았다.


"어르신~ 여기도 노인 어르신만 사는 곳이잖아요. 여기 노인회 회장 맡으시면 좋을 것 같으신데요~ 어떻게 생각 좀 해보시겠어요?" 말씀드려 보니 일말의 생각 없이 고개와 손사래를 져으시며 단호히 "아니다. 고향 이북 5 도민 친구들이 거기다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 있어야 해." 

머나먼 고향집 생각에 젖어 있으셨다. 당신은 살던 곳이 그동안 고향이고 향수가 묻어 있는 안식처였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과 함께 고뇌하시며 품어온 고향의 정과 부모님 전 그리움으로 살아온 한평생 한으로 간직하셨을 회장님. 마음속에 담아둔 삶의 지표였을 것이다. 단단한 삶을 지탱해 준 회장님 역할 속에 위로가 되어준 마지막 힘이었을 것이다. 


우리 회장님처럼 비슷하게 살아오신 또 다른 여러 어르신들도 허망한 꿈같은 생을 지내 오셨을 텐데 어르신들, 다음 생에는 꼭 태어나면 그토록 가고픈 고향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주셨으면 좋겠다. 비극이 낳은 분단의 아픔도 하루빨리 통일로 이어져 우리 5 도민 어르신들 고향 땅 밟고 남은 여생 편안히 천수 누리며 사셨으면 바람입니다. 어르신들 훌륭히 잘 사셨습니다. 모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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