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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Dec 24. 2024

꽃이 좋아 꽃을 꺾는 할매

마음의 꽃을 피우다

라넌큘러스(Ranunculus)는 풍성하고 겹겹이 쌓인 꽃잎이 마치 감춰진 마음을 드러내듯 피어나는 모습이 독특합니다. 처음에는 단단하고 닫힌 꽃봉오리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한 꽃잎을 활짝 펼치며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특히, 라넌큘러스는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어, 이 글 속 어르신의 변화와 닮은 느낌이 듭니다. 어르신의 고집과 상처가 천천히 녹아가며 다시 주변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라넌큘러스의 아름다움과 닮은 것 같습니다.



26.


요양원 곳곳엔 이쁜 꽃 화분들로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마당 화단에는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향기가 가득할 만한 나무와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여러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라 해주시고 힐링하시듯 매일 꽃밭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향기와 화사함에 취해가고 있을 때, 유난히 이상한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평소엔 늘 혼자 방에서만 주로 계시다가, 밖이 조용해지면 슬그머니 일어나셔서 혼자 내려가 산책을 하신다. 원래 다른 분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다 혼자 산책하실 때는 긴 원피스로 갈아입고 내려가셔서, 역시 여자이시구나, 아름답다 생각했었는데, 혼자 어슬렁 기웃기웃 산책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나 아니, 이게 웬일인가, 반전이었다.


어르신 방 안에 꽃밭의 꽃들이 목이 잘린 채 방 경대에 수북이 쌓아 놓고는 보자기로 덮어 놓인 채 시들어 있지 않은가. 매일 조금씩 뽑아다 당신 방 여기저기 구석에 꽃받침도 없이 놓아둔 채 죽어 있었다. 


깜짝 놀라 어르신께 왜 꽃을 꺾어 오시느냐 물어보아도 "내 맘이다"라시며 내 거니까 손대지 못하게 하신다. 이렇듯 억지를 쓰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작고 예쁜 화분 몇 개에 꽃을 모종해 방에 갖다 드리면서 "이제는 꺾지 마시고 이 꽃에 물 주시면서 잘 키워 보시라"라고 당부드리고 꺾어 온 죽어 시든 꽃을 치워 드렸다. 그러나 어르신께서는 긴치마 속에 꽃을 다시 꺾어 숨겨 와 방에 가져다 놓으시곤 하셨다. 


긴치마를 입으신 이유가 치마 속에 둘둘 말아서 마당이나 화분 위에 핀 꽃들을 숨겨 오셨던 것이다. 꺾지 못하게 말려 봐도 어느새 나가 꼭 꺾어다 숨겨 놓으신다.


"어르신~ 이러시면 다른 어르신들께서는 꽃구경을 못하시잖아요. 꽃이 다 죽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 생각대로 하시는 분이시다. 방바닥에는 치워도 치워도 매일 흙투성이 난장판이다. 


고집이 너무 확고하시고 누구 말씀도 안 듣는 분이다 보니 꽃구경은 짧게 끝나가고 있었다. 워낙 당신 주장만 있으신 어르신. 가족들과도 불화가 심화되셔서 도저히 소통이 불가하셨던 어르신이기에 가족들도 무척 힘들어하셨다.


한동안 혼자만의 세계 속에 사시던 어느 날부터 어르신 방문이 열리더니 자존심만 세우시던 분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과 여러 어르신들이 어울리며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궁금하거나 부러우셨는지 살짝 옆으로 다가와 참견하시며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은 여리신 것 같은데 마음의 깊은 상처가 있으신 듯 강한 모습, 센 모습으로 자존심을 세우셨던 것 같았다. 
조금씩 곁을 내주시듯 슬쩍 슬그머니 먼저 다가와 주셔서 식사하실 때나 혼자 산책하실 때 좀 더 가까이서 말벗해드리며 사랑을 표현해 드리니 마음을 열고 그동안 외롭게 억지 부리시던 고집을 내려놓으시는 것 같다.


이후 한결 자주 밖으로 나오셔서 여러 어르신들과 눈맞춤하시는 일이 잦으셨다. 그 후 우리 층은 어르신 주변에 생화가 아닌 조화로 조그만 꽃들로 화사하게 꾸며 드리면서 관심을 집중시켜 드렸다. 한결 부드럽게 편안한 행동으로 변하신 것 같았다.


눈맞춤할 때마다 웃음을 주시고, 당신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초콜릿을 건네주실 때 모든 것을 주신 거라 믿고 이제는 평온해지신 마음으로 다시는 꽃을 꺾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그동안 맺혀 있던 상처의 응어리가 다 풀려 이제는 모든 일들 잊고 행복하게 지내주시기만 하면 된다. 힘내시고 꽃처럼 예쁘게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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