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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Nov 16. 2024

모종

사랑과 정성으로 맺은 풍성한 열매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봄이 오면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모종을 심고 가꾸며 흘린 땀방울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간이 됩니다. 화단에 심은 작은 상추와 토마토가 자라나는 동안,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기쁨이 피어납니다.


모종을 가꾸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함께 웃고 나누며 사랑을 채우는 순간이 됩니다. 정성으로 키운 열매는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마음은 다시 젊어지는 듯합니다. 작은 모종에서 시작된 삶의 에너지가 요양원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워줍니다.



5.


와글와글 웅성웅성 시끌벅적 우당탕 덜그럭 달그락...... 모종 심기로 분주한 아침. 몇몇 우리 어르신들 떠드는 소리로 어수선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연례행사가 됐다.


옥상에 만들어놓은 화단에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등 어르신들 드실 수 있는 모종을 심기로 의기투합, 단합한 모종팀. 


예전 텃밭 좀 가꾸셨던 폼새로 척척 알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빈 화분에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적당한 모종을 선택하여 각기 다른 종류로 나눠 심기도 하신다.


힘들지 않으시냐는 물음에 "괜찮다", "재미지다"하시며 활력이 넘쳐 보이신다. 사람은 일할 때 가장 멋져 보이는 것 같다. 나이 드셨다고 손 놓고 힘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회춘하신 것처럼 신바람 나셨다.


서로 자연스럽게 분업화되고 있었고, 땅을 파면 모종을 심고 흙을 덮어주며 물까지 주신다. 누구 하나 서툴지 않게 정성을 기울이셨다. 


요양원의 무료함을 달래줄 소일거리가 생기를 주며 기쁨도 두 배. 모두 밝은 웃음으로 힘든 줄 모르고 열중하며 재미있어하신다. 정작 나는 낄 자리가 없어 뒷수습만 하고 있었다. 


잠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휴식 타임. 모두 벌겋게 오른 얼굴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하듯 이 정도쯤이야 오랜만에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흥얼흥얼 콧노래 소리도 들리고 참으로 보람찬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당신들이 심어놓은 곳에 본인 것이 직접 관여하여 아침 일찍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커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생기를 얻으시는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정성으로 크는 야채는 주렁주렁 가지마다 달려 있음을 보게 된다. 가지와 고추가 저마다 탐스럽게 매달려 있어 푸르름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고, 매일 점심 식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싱싱한 야채와 함께 수시로 고기 파티도 열린다. 너무들 맛있다 하시며 한여름 내내 싱싱한 채소가 입맛을 더해주었다. 


어느 날은 어르신께서 하얀 비닐봉지에 소박한 방울토마토를 따서 입에 넣어주며 먹어보라 했을 때 노란, 빨강 토마토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놀랐다. 


어르신들의 섬세한 정성이 더해져 여러 어르신의 먹거리로 충족되었다. 정성만큼 거둘 수 있었던 풍성한 열매들. 모종에서부터 결실을 보기까지 함께 나눈 사랑.


가만히 계시면 환자 같으시지만 이럴 때 보면 묵직하고 듬직한 내 어머니, 아버님 같은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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