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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Nov 18. 2024

서갑례 할매요

기억 저편에 남은 사랑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서갑례 어르신의 모습은 들국화처럼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시골의 자그마한 산골에서 자란 것 같은 야무진 손놀림,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며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 때론 고집스러워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 들국화가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과 닮아 있습니다.


들판에 흔히 피어나 누구에게나 친근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주는 잔잔한 위안과 힘은 특별하죠. 들국화처럼 서갑례 어르신도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자신만의 특별한 향기를 남기신 것 같아요.



6.


긴 복도 양 끝에는 긴 소파가 양쪽으로 나누어 놓여 있었다. 한쪽은 여자 어르신 방 앞, 한쪽은 남자 어르신 방 앞이었다. 


아침이면 웬만하면 이동할 수 있으신 분은 다 나와 앉아 계신다. 왁자지껄 자리 다툼하시면서, 한 번 앉아서 괜찮다 싶으면 당신 자리라 우기고 보시는 어르신도 계신다.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눈 맞추시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시고, 혹여 안 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시면 찾으시기도 한다. 


같은 말을 매일 되물으시는 어르신 한 분은 "어서 왔소, 같은 방인데 어디서 사시오?" 묻는 일상이 오늘도 반갑다고 하시며 모인다. 


그 가운데 전라도 깊은 산골에서 오신 우리 서갑례 어르신이 입소하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약간 굽어진 허리, 꺼무스레한 주근깨가 얼굴을 감싸고 있는 야무진 손놀림이 농사만 지으며 사셨던 것 같다. 약간의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나 정말 귀엽고 행복 바이러스 같은 어르신이다.


자녀분들도 유난히 어르신 뵈러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번갈아 다른 자식들이 면회 오셔서 살펴주신다. 


혹여 자식 얼굴 잃어버릴까 확인 또 확인. "내가 누구냐, 몇째냐?" 되물으면 오락가락 맞혔다 못 맞혔다 하시나 누구나 옛날 어르신치고 큰아들만큼은 성도 이름도 다 기억하시며 알아보신다. 


아들 왔다 간 날은 밤새 배회하시며 잠 못 이루시고 투정이 심하셨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모두 잊고 침상에 누워 여기저기 아프시다며 주사 좀 놔달라 조르신다. 


"선생님, 나 여기 좀 아픈데 주사 언제 놔줄라요~?" "예~ 방에 누워 계시면 금방 갈게요~." 하면서 볼펜 들고 엉덩이에 꾹 누르는 척만 해도 잠시 후 개운하다 하시며 잠깐은 잘 지내신다. 


몇 시간 후 다시 또 "선생님, 언제 주사 놔줄라요~?" 하면 다시 볼펜 들고 엉덩이에 놔주는 척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신다. 주사 맞으면 괜찮았던 기억이 남아계신 것 같다.


아들딸들이 사다 준 간식은 모두 들고나오셔서 이 사람 저 사람 드시라고 풀어 해쳐 놓으시고,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으신 따뜻한 분. 행복해하신다. 정 많고 사랑 많으신 어르신이다. 


가져오신 과일 1개, 사탕 몇 개씩 싸 주시면서 먹어보라 주신다. 곁에 앉아 있으면 포근히 내 다리 끌어다 베개 삼아 꿀잠을 주무신다. 당신 코 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시면 아프다… 또다시 주사 좀 놔달라 하신다. 볼펜이 명약이 된다. 


우리는 너무 웃겨 넘어간다. 정말 순수하신 귀요미로 선생님들께 사랑 듬뿍 받고 계신 어르신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은 주사기를 가져오라 하시며 확인하신다. 곧 볼펜인 것을 들켜버렸다. 몇 시간 뒤 다시 바늘 없는 주사기로 놔드리는 척하면 또 속아넘어가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쌌다 풀었다 하시면서 실내화 한 짝에 운동화 한 짝씩 바꿔 신고는 새로 사 온 신발이라며 엉덩이 씰룩씰룩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에 가슴 저미게 한다. 


베개 들고 당신 옆에서 함께 자자고 빨리 들어오라 하실 때 베개 들고 옆에 누우면 머리에 손 얹고 토닥거리시다 당신이 먼저 잠드신다. 


우리 서갑례 어르신, 귀여움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의 행동을 보고 자란 자식들조차 정이 많아 보였고, 그 먼 시골에서 올 때마다 100% 유기농 야채를 직접 길렀다며 나눠주시려고 한 보따리씩 가져다주셨다. 정말 맛있게 잘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번씩 기억이 오락가락하신 분이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하시다 남의 침대에 누워 비켜주지 않고 당신 것이라 우기시다 싸움이 날 때가 있어서 잘 살펴드려야 한다. 


매일 반복된 상황이지만, 다른 어르신들 사이에 끼어 반짝이는 눈망울이 밟혀 꼭 다시 잘 챙겨드려야 할 것 같았다. 


오래전 여기 오셔서 함께한 세월만큼 기억도 퇴색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신 우리 사랑스러운 어르신, 하늘나라에선 누구하고 지내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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