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뭘까. 클래식보다는 현대적이며 가요보다는 대중적이지 않아 고상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형태 정도로 정의해 보겠다. 재즈에 관심도 없는 내가 새로운 도파민 거리를 찾아 라이브 재즈 클럽에 다녀왔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짜릿함을 주기에. 그리고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지금까지 몰랐던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될지도?라는 기대감. 기대감은 설렘을 주고 그렇게 퇴근 후 저녁 8시 홍대역과 합정역 사이쯤 위치한 클럽거리에 갔다.
오래된 건물 2층에 위치한 클럽 에반스는 간판에서부터 심상치 않다. 오래된 맛집을 찾으려면 해진 간판을 찾으라는데 여기 간판 아직 달려있는 게 신기하다. 폐업했다 해도 믿을만한 간판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2층입구로 향했다. 나무문을 잡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담하고 어둡다. 입구에서 혼자온 나를 보고는 연주를 하러 오셨냐고 묻는다. 아니오. 구경 왔습니다.
입장료 15,000원과 진 토닉 한잔 7,000원. 22,000원이면 이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무조건 뒷자리를 선호한다. 앞자리는 부담스럽지 않은가. 제일 뒷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염탐하며 공연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재미 아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은 같이 동반한 사람들이 앞자리를 이미 선점했다. 따로 앉을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곳에 왔다면 판을 다시 짜야지라는 생각에 그대로 앉았다.
8시 도착하여 30분 동안 진토닉과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8:30분. 3명의 연주자가 나와 연주를 시작한다. 그랜드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선율에 심심한 듯 담백하다. 메인멜로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피아노가 당연히 중심이겠지만 베이스 연주자가 중앙에 서있어서 그런지 베이스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클럽 에반스는 매일 다양한 테마로 진행되는데 월요일에는 스탠다드 재즈를 베이스로 하는 잼이 진행된다. 잼이 뭐시냐. 즉석에서 연주자들이 희망곡을 적어내면 그곳에 다른 연주자들이 합을 이루어 연주하는 것. 즉석연주! 재즈정신 그 자체인 것! 스탠다드 재즈라는 것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오는 고전 같은 것이다. 재즈의 역사 같은 것이지. 클럽이름인 에반스도 사람이름인데 재즈의 아버지쯤 되는 사람인 것 같다.
재즈에 대해 전혀 몰라서 같이 온 사람들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아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미술을 몰라도 미술을 즐길 수 있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 몸으로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아카펠라 공연까지 한 짬이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생각해 보니 아카펠라 공연 때 재즈곡을 해본 적이 있다. 협인 듯 불협인 듯 변태적인 화음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 리듬 또한 어려워서 따라기가 무진장 애먹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즉석으로 합을 맞추다 보니 재미있다. 한 팀으로 연주하는 공연은 당연히 완성도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맞춰보지 않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연주를 한다? 그것도 리허설도 없이 즉흥으로? 변수가 다양하다. 재즈가 자유도가 높다고 해서 아예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래의 기본 코드 진행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변주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오늘은 피아니스트 8명, 베이시스트 3명, 드러머 3명, 트럼펫니스트? 1명, 여자보컬 1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다양한 피아니스트들을 볼 수 있다니 럭키비키! 여자 보컬분은 안타깝게도 피아니스트 분이 키 변경이 안된다고 하여 마이크만 잡았다가 쓸쓸히 퇴장하셨다. 이런 즉흥성. 너무 좋은걸? 짜여 있고 정제된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곡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 있겠지만 뭐 어떠한가? 그것 또한 음악이다.
재즈는 공평한 음악이다. 중간에 꼭 솔로파트가 있더라. 악기 특성상 피아노, 보컬이 있다면 보컬이 메인이 된다. 베이스나 드럼은 보조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을 위한 시간이 있다. 솔로연주가 시작되면 다른 악기들은 소리를 줄인다. 베이스 연주자가 그 큰 베이스를 껴앉고 연주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커다란 북극곰을 껴앉고 있는 느낌이랄까? 드러머의 솔로 시간에는 드러머의 화려한 손기술을 볼 수 있다. 역시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표정 또한 한껏 폼을 잡으니 더 집중되는 느낌이랄까.
대부분의 연주자들의 수준은 상당했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았다. 잼이란 것 자체가 경험치를 쌓기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연주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서로 맞춰 주는 것. 그러면서 또 배우는 것이겠지. 피아니스트 연주자 한 명에게 완전 반해 버렸지 뭐야. 연주실력도 상당하고 아주 피아노를 잡아먹겠더라. 어설픈 실력으로는 연주하겠다고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7곡~8곡의 연주 중 2곡의 연주에서 소름이 돋았다. 즉흥연주에서 이런 합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경이로움이 몰려왔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지만 음악으로 대화하며 눈으로 상호작용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나 또한 음악가를 꿈꾼 적이 있다. 서른이 다 되어갈 때쯤 꿈을 이루겠다며 회사까지 관두었던 나다. 상상도 못 할 연습량과 레슨비에 꿈을 접어버렸지만, 도전했기에 후회는 없다. 아직 꿈을 잊지는 않았다. 나는 평생 음악가로 살아갈 것이다. 대신 취미로만 즐길 것이다. 내가 이루진 못한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다. 한 가지에 꾸준히 몰입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다.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다. 나도 한 가지를 찾아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은데 직장에서도, 취미 활동에서도 그렇지 않다. 항상 이것저것 찍먹하기에 바쁘다. 단 한 가지만 잘할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은가? 음악 실컷 즐겨놓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