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가 휠체어를 탈 기회는 극히 드물다. 태어났을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은 불행한 삶일까?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은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 휠체어라는 어감이 주는 이미지는 수동적이다. 스스로 휠체어를 끄는 모습보다는 누군가가 뒤에서 끌어주는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차를 운전하듯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 러닝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청년과 함께 달릴 수 있었다. 총 3회의 세션 중 1회는 강의를 듣고 아이스브레이킹 하는 시간이었고 2회에는 가까운 노들섬까지 왕복하는 프로그램, 3회에는 실제 한강변 달리기를 함께했다. 프로그램이 열리는 용산청년센터 지음에서 노들섬까지는 걸어서 30분 남짓 떨어져 있었다. 이 거리를 휠체어 탄 청년과 짝꿍을 이루어 함께 이동하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휠체어를 탄 사람과 싶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관심 밖이었다. 30분 동안 이동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휠체어를 끌면서 도와주는 것은 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하고 그저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짝꿍은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였다. 매주 1회 프리다이빙을 배우러 다닐 예정이라고 했고 얼마 전에는 서핑을 다녀왔다고 했다.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이 하기에도 힘든 활동을 불편한 다리로 해내고 있다는 것에 경외심이 들었다. 수영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본인의 장애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수영강사를 찾기 어려워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11월에는 특수 보행기를 이용해 JTBC 마라톤 10KM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릎 아프다고 찡찡거리던 나 자신이 숙연해진다.
우리 모두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즐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친구는 너무 훌륭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 누구나 어쩌면 마음속에 장애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다. 살아가면서 크게 눈에 띄지 않기에 발견되지 않을 뿐일지도.
용산역에서 노들섬으로 이동하는 구간 마지막에는 긴 오르막이 있다. 하필 노들섬에 뮤직페스티벌이 있는 터라 주변에 사람도 많아 인도는 복잡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가는 길을 따라 꿋꿋이 이동했다. 오르막이 길게 이어졌지만 친구는 도움을 청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해보겠다고 했다. 넘기 까다로운 턱이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긴 언덕을 두 팔로 힘차게 돌려가며 휠체어를 굴렸다. 남이 휠체어를 끌어줄 때는 수동적인 느낌이 들지만 본인 스스로 휠체어를 굴릴 때 자유를 느낀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우리는 노들섬에 도착했다. 노들섬에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휠체어로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방향 전환하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한쪽 바퀴는 고정한 채로 다른 한쪽만 돌리면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데 내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더라. 오르막은 어찌어찌 올라갔는데 바로 앞에 있는 야트막한 턱을 넘는 게 어려웠다. 턱이 나올 때마다 휠체어는 잠깐 멈췄다가 탄력을 받아 바퀴를 살짝 들고 내리는 걸 반복해야 했다. 이동자체가 고행인 샘이다.
아주 잠깐 휠체어를 굴렸을 뿐인데 양팔에 근육통이 왔다. 오호라 수동휠체어로 돌아다니면 상체근육 좀 발달하겠는데? 식상한 말이지만 두 다리로 어디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두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 더 수고스러울지라도우리는 아름다운 두 눈을 가졌고 세상을 볼 수 있다. 나도 언제든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예측 불가이다. 그러니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아무 생각 없이 해넘이를 보러 와서 피크닉을 즐겼던 노들섬이 다르게 보인다. 이 노들섬을 오기 위해서 누군가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속을 헤쳐나가야 하며,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노심초사해야 한다.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해코지하여 휠체어를 맘대로 끌고 가 버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힘겹게 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자전거처럼 오르막이 힘들면 내려서 끌고 가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휠체어 탄 친구는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동 휠체어를 타고 나와본 적이 없다고. 전동휠체어는 편하지만 부피가 커서 이동이 제한된다. 수동휠체어가 훨씬 활동성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수동휠체어를 탈 때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길가에 보이는 수많은 자전거처럼 더 많은 휠체어를 길가에서 보고 싶다. 배리어프리러닝이 특수한 행사가 아니고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서 휠체어를 본다면 반갑게 인사하자. 휠체어가 아닌 그곳에 타고 있는 사람의 눈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