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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망 Aug 14. 2024

1% 부족할 때, 책과 미술

삶이 싱거운 당신을 위한 예술 레시피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지?

물론, 이 생각이 뇌에 정권 찌르기를 할 때는 바로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다. 그럴 때에는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가방 지퍼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가방 속 물건들과 실랑이를 한 후, 내 손에 이끌려 나오는 물건은 바로 '책'이다.


레시피 1. '책'이라는 양념을 쳐라

월요일 오전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죽겠는데 무슨 책이냐고? 물론, 책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적어도 나에게는 책이 삶의 윤활유가 되어버렸다.


사실, 우리네 인생을 멀리서 보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엄마 뱃속에서 외마디 '응애'하고 태어나, 학창 시절에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고 하다 보면 벌써 늘그막이다. 이러려고 내가 태어났나 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에 우울해지려는 찰나, 환기를 돕는 건 바로 책이다. 물론, 요즘은 유튜브나 SNS등 생각의 전환이 손쉬운 플랫폼들이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회의감만 들 것이 분명하다.


빳빳해서 자꾸만 덮이는 책의 한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꽉 잡고 페이지를 넘긴다.

책 속의 김토끼는 아침부터 당근을 많이 먹었다고 엄마토끼한테 깨지고 있다.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지하철 창밖을 보며 생각한다.

'아 나도 어제 냉동실에 남은 피자 다 먹었다고 엄마한테 혼나면서 나왔는데.'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띤다.

다시 책을 편다. 이번에는 김토끼가 회사에 출근해서 박다람쥐와 탕비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또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한다. '아 어제 올림픽 펜싱 결과 나온 거 오늘 김 OO 씨랑 얘기해야지'


'이번 역은 OO, OO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책을 읽다 보니 벌써 회사에 도착했다. 아침 출근길 착잡했던 마음이 책 속 김토끼에게 동화되어 조금 위안이 된다.


이는 내가 가상의 사례를 지어낸 것이지만, 실제로 내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렇듯 책은

우리의 일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책이라는 물리적 매체로써 독자와 한번 거리감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일상의 톡톡 튀는 양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양념을 했으니 무엇이 필요할까?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고, 단연 데코레이션(Decoration)이다.


레시피 2. '미술'이라는 장식을 해라.

그렇다. 내가 책과 함께 좋아하는 것은 미술, 아트다. 책이 밍밍한 설렁탕의 소금이라면 미술은 그 위에 올라가는 고명 같은 역할이랄까. 없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있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그런 의미이다. 혹, 미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으신 분이라면 나의 이전 글을 보고 오시길 추천드린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은 창조해 내는 것보다는 감상하는 쪽에 더 가깝다.


하루종일 사회생활 가면을 쓰고 지친 나는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남부터미널역 예술의 전당으로 직행한다. 현재 하고 있는 건 '베르나르 뷔페 전(展)'이란다. 사실, 뷔페가 누군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먹는 뷔페뿐.

큰 기대 없이 입장한 나는 전시장 초입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나를 멈추게 한 작품은 바로 '광대'이다.

Bernard Buffet - <광대>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운 화장과 화려한 장식이지만 왠지 공허하고 슬퍼 보이는 표정. 그 당시 뷔페가 자신의 마음을 광대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앞에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을 광대들의 모습을.

이를 보며 하루종일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의 페르소나가 생각났다. 그리고 뷔페의 그림은 사회생활에 지친 나에게 스며들어 뭉근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요리의 완성

우리는 하루하루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 지겹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 없으며, 또 어떤 이는 감사하며 살기도 한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들 하지만, 그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예술만 한 게 없다.

삶이라는 요리가 1% 부족한 맛이라면 책과 미술을 더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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