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Aug 31. 2024
미국이 싫은 미국 애 엄마
미국에서 공립학교 시작하는 나의 5살 딸에게...
미국 사람들끼리도 늘 이야기한다.
"It's high school all over again."
(결국 다시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다.)
미국 하이틴 영화를 보면 늘 나오는 고등학교의 손에 꼽히는 몇몇 부류들. 가장 먼저 여자는 Cheerleader, 남자는 Jock(운동부), 그리고 히피, Emo, 밴드부, nerd들, 등등.
고등학교 때 딱 1년 미국 Virginia Beach라는 도시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해 본 토대로 소개를 해 보자면, 치어리더들은 학교 다니면서 늘 짤롱 치마를 입고 수업에 들어온다. 어느 날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안녕?"하고 살갑게 인사를 건너다가 그다음 날에 인사를 할라치면 쌩까고 지나가 어느 장단에 널을 뛰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되는 아이들. 한 번은 급식실에서 점심받으려고 줄 서있는데 앞에 있던 치어리더 여자애가 나더러 전학생이냐 물으며 같이 점심 먹을 친구 없으면 자기랑 같이 먹자고 초대했다. 그 친구가 먼저 계산을 하고 나갔고, 뒤따라 나도 내 것 계산하고 식판을 들고 그 친구를 찾아갔더니, 나를 아주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다. 이거 너무 영화에서만 봤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 그 애 앞에서 너무나 큰 웃음이 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사실, 정말 아무렇지 않았고) 다른 자리 가서 혼자 먹었던 기억도 있다.
Jock -운동부 남자들은 대부분 미식축구가 많은데, 얘들은 자기네가 마치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마냥 으스대고 다녔고, 행여 운동 중 부상으로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애들은, 대마 같은 마약에 손을 대며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가 상당히 '쿨'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해 보였다. 스포츠 별로 관심 없는 나여서, 얘네에 대한 정보도 이 정도까지...
그에 반한 밴드부 아이들은, 엄마가 갓 빨아줘 따끈한 건조기에서 나온 세제 냄새 솔솔 날 것 같은 흰 티셔츠에 검정 정장 바지를 입고 다니는 애들이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밴드 말고, 트럼펫, 오보에, 등 군 악단에 있을 법한 악기들을 하나씩 다루는 착한 아이들 같은 느낌? 학교 복도를 커다란 악기 가방 하나씩 메고 분주히 다니는 것 외에는 그렇게 큰 특이점은 없는 착한 엄친아, 엄친딸들 느낌...
널드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천재적인 아이들이나 괴짜가 있는 부류였다. 역사 수업시간에 내 옆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애는 2001년도 깡시골 부촌이던 그 지역에서 한국의 김치 장독 문화를 알아서 나에게 여러 질문을 해오곤 했다. 그리고 교과서에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은을 바꿔 실어 넣은 것을 선생님께 같이 가서 알려드린 적도 있었다. 그나마 착하고 다른 문화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나, 워낙에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고 개성이 강해서 친해지기도 좀 어려운 부류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외 히피들, Emo (하드 락 좋아하고 검정 옷에 약간 자학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 - 피어싱 많고), 그리고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는 않은 나 같은 어중삥삥이들도 있지만, 졸업하기 전까지는 결국 어떤 부류든 한 곳에는 속해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그 상황을 초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곧 돌아갈 사람'이어서 였다. "늬깟것들이랑은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나만의 자신감?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내 친구들도 있고, 나의 사회적 위치(?)를 회복할 수 있기에 의연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치고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의 꼴 같지 않던 애들을 다시 마주해야 할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유(遊)학생이 아닌 유학생(留學生)이여야함으로, 공부에만 전념할 다짐을 하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석사로 와서 만난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내가 접했던 아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대학을 모두 졸업했을 뿐 아니라, Yale, Brown, Cal Tech, 등등 좋은 학교 출신들의 친구들이라 그런지, 고등학교 때와는 한참 달라서 교우관계가 훨씬 수월했다. 무엇보다 미국을 떠난 후 10년이란 세월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아주 높아졌고, 삼성 기기 없는 친구가 없었으며 한국 음식에 주류문화까지 점차 인기가 올라가서 내가 한국인이라 무시당하는 일은 겪지 않았다.
그때 친해진 친구에게 나의 미국 고등학교 체험기를 이야기해 주니, Yale대 출신 친구 왈, "보통 고등학교 시절 때 일생일대의 모든 영광을 누린 애들은 이렇게 대학원에 못 와. 아마 벌써 애 하나 둘 썩은 낳고 그 시골에 여전히 살면서 펑퍼짐한 아줌마가 됐을걸?" 본인들도 그다지 재미있지만은 않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길, "일터로 나가봐, 그런 애들은 자기네들이 고등학교 내내 무시하고 왕따 시켰던 널드들을 직장 상사로 모시며 빌빌대고 살꺼야. 역변해."
미국에서 그 후 박사까지 받고, 직장을 잡은 나는, 그 친구가 이야기한 대로 상황이 역변하는 것을 보고 있다. 분명 예전에 저 사람은 외모가 됐든 특이한 성격이 됐던 간에 왕따 당했을 것 같은 사람이 이제는 윗전에 앉아 떵떵거리며 이제 와서 되갚아주듯 아랫사람들에게 히스테리 부리듯 일하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만약 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처음부터 다녔다면, 나는 어느 부류에 속했을까? 아마 밴드부 아니면 널드 쪽이지 않았을까? 절대로 우리 엄마는 나를 치어리더 하도록 두지는 않았을 것이고, 신체적인 조건에서도 이미 저 게르만족의 사지 육신에 밀렸을 거라 결국엔 가지 않을 길이었을 것이고, 아마 피아노는 계속 치지 않았을까? 여하튼, 한국에서 어울리는 친구들과 비슷한 급으로 친구를 사귀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가방끈도 꽤나 길어졌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애를 낳고 학교를 보내기 시작하니...
고등학교의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석사, 박사, 그리고 직장에 오며 걸려냈던 부류들을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다. 오리엔테이션이라고 간 학교 모임에서 벌써부터 저 어린 다섯 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서도 미래의 치어리더, 미래의 못된 놈이 보이는 것 같다.
저 사이에다 내 아이를 던져두어야 하는 마음.
내 아이는 어떤 부류로 들어갈지 아직 모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미 선택지가 다 주어진 것 같은 느낌이지만... 벌써부터 미리 상처받을까 겁내는 나도 내가 우습다. 그치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또 걱정이 어떻게 아예 안 되리...
그래서 갑자기 나의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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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유나야,
너는, 그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고, 깐히 볼 수 없는 그런 위대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단다. 언젠가는 네가 거느리고 갈 사람들이니까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숲을 보고 갔으면 좋겠단다.
너의 학교 생활에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할 진상 엄마가 될 준비도 되어있으니, 너에게도 같은 기회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굽히지 말거라.
셰익스피어 연극에 주인공은 동양사람도 할 수 있는 거야. 어차피 배역이니 인종이 무슨 상관이겠니? 아는 것은 안다고 자신 있게 발표하고, 모르는 것은 자신 있게 알 때까지 물어도 돼.
이제 킨더가든 시작하는 조고만 너의 어깨 위로 책가방 지워주고 큰 스쿨버스 위로 태워 보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눈물이 나니, 왜...
엄마가 겪었던 안 좋았던 경험들이 이렇게 이제와 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경험조차 고마워지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세상이 변한 만큼 너의 학교 생활은 꽃길만 걷길 바란다.
너의 뒤에는 엄마가 있어. 믿고 씩씩하게 잘 달려가!
너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