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Sep 25. 2024
우리 세대 사람들 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칭찬 많이 받고 우쭈쭈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나도 대세에 따르는 부모님 아래에서 커서, 막 그렇게 칭찬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다. 칭찬은 바라지도 않지.. 욕을 먹으며 자랐다.
남들보다 무언가를 월등히 잘하는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한 두 개 내 마음속에 있었다고 하면, "아구, 전국에 그거 잘하는 애가 얼마나 많은데 뭐 이 정도 갖구!" 하며 사람들 앞에서 누가 칭찬이라도 할세라 엄마 아빠는 워~워~ 먼저 미연에 초를 쳤다. 사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시는 것 때문에 나의 자존감이 낮아진 건 아니다. 별로 뭐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내재된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나의 캐릭터 형성에 어긋나는 일이 있었고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 합격을 하자마자 뺑글 뺑글 돌아가는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기 시작했고, 또 아이라인까지 그리고 다니니까, 동네 사람들은 내 눈 크기가 갑자기 10배 커져 보인 듯했나 보다. 동네에 지나가던 아주머니라도 붙잡고 세워 "예쁘다"는 칭찬을 해오면,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엄마는 옆에서 "아우, 20키로 빼면!!" 이라고 찬물을 껹었다. 동생이란 놈은 어디 가던 중에 또 누가 "늬 누나 이뻐졌더라"고 칭찬해주시니, "내가 누나가 둘인가?"라고 맞받아쳤다고 하여 그 아줌마가 길바닥에서 웃다가 오줌 쌀 뻔했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전했고, 또 우리 엄만 그 얘기가 그렇게 웃기다면 또 저녁 먹는 밥상에서 또 전해주시네?
가족 분위기가 다 뭐 이렇다 보니, 나도 뭐 그냥 내 스스로 내가 잘한다고 느끼는 것에는 혼자 뿌듯해하면 됐지 남의 평가 따위 신경을 좀 덜 쓰게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역으로 칭찬을 받으면 몸서리치게 못 견디겠다. "어머, 이 옷 이쁘다" 누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 칭찬이라도, "아, 이거 시장에서 떨이로 샀는데 여기 겨드랑이 밑에는 구멍 났어요!"라고 묻지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은 구석을 까보이며 스스로 디스를 했다. "너 이거 정말 잘하는구나?" 하면 "아, 운 좋았어요"라고 하고... 그마저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는 "아우, 그럼 뭐 해요, 이러이러 한데..."하고 자학에 가까운 자기 고백을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러는 나를 참 겸손한 사람이다, 사람 좋다. 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니까, 내가 나한테 하는 나의 마음의 소리가 점점 나를 갉아먹고 있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일이 시원찮게 풀린다던지, 테니스를 하더라도 잘 안 쳐지기라도 하면, 너무 풀이 죽어서 내 전반적인 생활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한국에서 살았으면 좀 덜 했을 것 같은 부분도 있다. 내 부모 든든하게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근데 해외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행여 내가 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손가락질받게 되면 완전히 고립이 될 것 같다는 이상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런지, 늘 좋은 사람인 척 속만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다. 그러다 집에 오면 가장 만만하고 편한 가족에게 그 울분과 억눌렀던 감정들이 엉뚱한 타이밍에 나오는 것도 같다.
애가 없을 때는 불쌍한 남편만 귓구녕이 터져 나갔는데, 애기가 생기니깐 나로 인해서 공포감이 조장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도 있고, 애에게도 너무 미안해서, 더 눌러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엄마로서의 노력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래도 어찌 늘 결과가 좋으랴... 내 마음과는 다르게 결과가 좀 안 좋거나 나의 게으름으로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짜증과 불안이 그래서 더 엄습해 오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에서 시작한 나의 많은 고민들이 결국에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도달하여, 스스로를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노력으로 요새 하고 있던 것이 나에게 관대해지기이다. 물론, 밤에 야식 안 먹기로 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안 지키고 "곧 생리하니까"라고 하며 정당화시킬 때는 너무 잘하는 거지만, 그런 것 말고,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 절대 자책하거나 후회를 하지 않아보려고 한다. 지난 일을 되새김하면서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 했지?'를 반복하며 스스로 괴롭히는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앞으로 어떻게 잘할지만 집중하고 나아가보려고 한다.
불바다가 된 소돔을 가족 들과 피신을 하도록 도와주는 천사가 "단, 뒤돌아보지 마라"고 당부했음에도 롯의 부인은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으로 변해 버렸다. 이미 지나간 일, 좋지 않은 과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소금기둥이 되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하나씩 계획을 정해서 실천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 딸아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에 저가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듣고 싶다고 틀어달라고 했다. 요새 세상은 유튜브가 있어서 검색하면 바로 나와서 그 노래가 나는 무엇인지 몰라도 대번 찾을 수가 있었다. 미국 동요를 배우는 중이라 비록 나도 처음 들은 노래였지만 배우고 흥얼거리는 데는 어렵지가 않았다. 딸은 자기가 먼저 부르겠다고 하더나, 2절은 나더러 부르라고 하여 나도 따라서 불렀다. 그랬더니 딸이, 나에게, "옳지! 맞았어! 어쩌며는 이렇게 잘 하까?" 하고 다섯 살짜리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구수한 칭찬이 나왔다. 엄마가 여름 내 계시면서 우리 딸에게 저렇게 칭찬을 해주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칭찬을 딸에게서 들으니, 갑자기 울컥했다. 이 칭찬은 부정하지 않고 오로지 잘 받을 수 있었다. "엄마 잘했어? 너무 고마워!" 하고 좋아했고, 딸아이는 처음 듣는 노래를 바로 따라 부르는 나를 신기해하며, 또 자랑스러워하며 좋아했다.
그 어느 누구에게서 듣는 칭찬 보다도 가장 듣기 좋았던 칭찬이었다.
근데 나는 그런 말을 우리 엄마 아빠에게 얼마나 해 드려 보았나? 엄마 반찬솜씨가 이제는 맛이 있네 없네 투정이나 하고, 아빠가 뭐 도와주고 나면 "아유 뭣하러 이렇게 했냐"고 걱정 반 투정 반 섞인 말이나 늘어놨지 한 번도, "어쩌며는 이렇게 잘할까?"라는 말을 해드리지 못했다.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이제 더 잘해' 하고 으스대기는 했지만, 오로지 엄마 아빠를 위한 칭찬은 안 해드렸던 것 같다. 내가 받지 못하고 컸다고 나도 똑같이 안 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만 했지, 엄마 아빠에게 칭찬을 해 드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이제사 하게 된 게 참 부끄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엄마 아빠에게 칭찬 공세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민망해서 어떻게 갑자기 하나.. 내 식으로 그래도 잘하는 건 잘한다고 말씀을 드려야지...
"엄마 아빠 닮아서 이렇게 잘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