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노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도 돼요?"
우리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각자 아이패드로 내 YT 계정 내 본인 이름의 플레이리스트에 담는데, 혹시 비속어나 표시되지 않은 비속어가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먼저 들어본 후 담아주고 있다.
미국은 노래에 어쩜 그렇게 욕이 많은지. 비트부터 도발적인 랩, 힙합 장르가 아니어도 무심한 듯 쿨(?)하게 넣는 비속어가 너무 많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A$$'나 'He!!' 같은 단어들은 공중파 라디오에서 묵음처리 됐었고 지금도 포멀 한 자리에선 비속어로 간주되는데, 어느새 슬금슬금 비속어가 아닌 듯 서서히 스며들기 중이다. 시엄마는 쯧쯧 혀를 차신다.
우리 집 5세 둘째도 비속어를 쓰진 않지만 단어를 들으면 나쁜 말인 걸 안다. 올해 킨더가든 입학 예정으로 아직 단체생활을 해 본 적 없고, 주변의 누구도 비속어를 쓰지 않는데도.
올해 미국 4학년인 첫째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가 밖에서 배워오는 욕은 어쩔수 없다. 내가 세운 울타리는 한계가 있다는 건 이미 모든 부모가 안다.
내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욕을 하다 들키면 엄마의 무시무시한 응징을 감당해야 했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 오픈하면 지옥문이 열렸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들끼리 있을때 까지 욕을 안 하냐 하면 그건 아니지.
어디선가 배운 욕을 쓰는 아이에게 그건 품위가 떨어진다 엄마는 말하고, 안 한다고 친구와 멀어지는 것도 아니란 걸 알지만 기를 쓰고 하게된다.
아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으니 내가 지금껏 그려오던 육아관과 울타리는 어쩌면 모두 의미 없는 허상이었나 싶고, 허탈하니 부모 입장에선 화도 나겠다.
내 울타리가 내 마음처럼 다 막아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고
내 마음처럼 예쁜 말만 써 주지 않는 때가 오면
'친구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알아서 성장하길 기대하던지
반대로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막아봐야 할까?
아이들은 상호작용을 하며 많은 정보와 경험을 접하고, 저 나름대로의 결론을 안고 집에 온다.
밖에서 수확해 온 대혼돈의 보따리에서 쭉정이와 흙을 씻어내고, 깨끗하게 걸러 어떤 알맹이가 나오는지 아이와 함께 찾아봐 주는 사람.
그 알맹이, 결론이 사회 통념상 옳고 그른지 중심을 잡아 줄 사람. 바로 부모이고,
그렇게 함께 찾아낸 알맹이는 아이의 평생 가치관의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통념과 예의를 가르치는 의무가 있는 부모로서 나는
'비속어는 나쁜 것' 이라고 단호하게 안 걸러줘도
저가 나이 먹으면 알아서 안 하겠지, 걸러지겠지, 예측에 기반해 손 놓고 기대할 수만은 없고,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것을 '괜찮다' 라고 아이에게 나서서 말하는 위치를 자처하거나,
분노해소의 일환이라 포장하는 것은 부모의 위치에 맞지 않다 생각한다.
심한 질책 역시도 반발을 부를 뿐.
내가 할 일은 그것을 단호하게 지양하는 씨앗을 심고,
같은 페이스로 꾸준히 물을 주는 것이 아닐까.
비속어를 하게 둔다는 부모도 많고,
딱히 그 부모들을 저격하고 비난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세상 모든 이견들이 그렇듯
그 부모들의 결정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고,
그들 눈엔 내 이런 단호함이 시대에 뒤처지고, 오버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 가치관의 차이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택하던지 결국 우리 모두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다른 부모들이 어떻게 그들의 아이들을 키우는지 기웃거리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부모들의 양육방식을 보며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가 육아뿐 아니라 인생에서 반드시 지키고 싶은 마지노선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나'부터 먼저 단단하게 세우는 작업을 하는 것 아닐까.
우린 가끔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들을 스스로도 충분히 잘 생각해 보지 못했을 때가 많고, 그러다 보면 허둥지둥, 혼란을 마주하고 예기치 못한 불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친구같은 부모 보다는 '가르치기 위해 더 열심히 생각하는 부모.'
나의 이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