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날
11월 17일, 이름 모를 그분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다 우연히 ‘순국선열의 날’ 설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독립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일신과 목숨을 잃은 분들을 기리는 법정기념일, 11월 17일.”
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문장이지만, 다시 읽으니 마음이 멈춰 섭니다.
‘일신과 목숨을 잃었다’는 말속에는,
한 사람의 하루와 평범한 일상, 웃음과 눈물, 가족과 꿈이
한꺼번에 잘려 나간 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당연함’의 뿌리
오늘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글로 글을 쓰고,
한국이라는 이름의 여권을 들고,
선거를 하고,
불편한 정책에는 비판을 보태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권리와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빼앗기고, 금지되고, 감시당했던 언어와 생각, 모임과 노래들.
그 부당함에 맞서 “아니다”라고 말했던 사람들,
그러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간 사람들.
우리는 그분들의 빈자리를 딛고 서 있습니다.
교실에서, 거리에서, 오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
“순국선열”이라는 단어는 종종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의 굵은 글씨, 시험에 나오는 용어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끔 이렇게 묻습니다.
“너라면 어떤 순간에, 무엇을 위해 ‘내 삶을 걸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순국선열은 먼 과거의 영웅이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자신의 하루를, 가족을, 편안함을 뒤로하고
이상과 양심을 선택했던 평범한 청년, 부모, 친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 – 자유, 존엄, 평등, 연대 – 를
오늘의 자리에서 이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11월 17일, 짧은 침묵이 건네는 질문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흐리거나 맑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봅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하루를
어떻게 써야 그분들께 부끄럽지 않을까.”
묵념은 단지 고개를 숙이는 의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다시 가다듬는 작은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10초쯤 눈을 감아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했으면 합니다.
“당신들이 지켜낸 이 땅에서,
저는 오늘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순국선열에 대해 묵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