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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이름보다 먼저, 사람의 길부터

역 이름보다 먼저, 사람의 길부터

진주에서 창원중앙고등학교까지,

매일 아침 기차에 몸을 싣고 이동하며 저는 자연스럽게 창문 밖 풍경보다 ‘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늘 질문을 품게 합니다.


최근 창원대학교를 중심으로 “역명 되찾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창원중앙역’을 ‘국립창원대역’으로 바꾸자는 움직임.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세우려는 취지라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기차에서 내려 실제로 발을 딛는 순간,

제 생각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름보다 더 절실한 것은 ‘오를 수 있는 길’


창원중앙역에서 창원대학교로 향하는 길.

그 연결 통로는 긴 계단, 가파른 경사, 그리고 작은 돌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진 속 계단에는

“계단이 있어 헛디디거나 미끄러질 위험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이렇게도 읽힙니다.


“이 길은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유모차를 미는 부모,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

무거운 짐을 든 학생에게 이 길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역의 이름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역을 향해 오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은 누구를 위한 상징일까요.


지역 상생은 구조에서 시작된다


지역 상생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에서 만들어집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길,

그것이 진짜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창원대학교와 창원중앙역을 잇는 길이

엘리베이터, 경사로, 무장애 보행로로 개선된다면 어떨까요?


그 변화는 단순한 편의시설 확충을 넘어

‘포용의 도시 창원’이라는 메시지를 실천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길은 학생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 방문자, 관광객 모두에게

따뜻한 첫인상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꿈꾸는가


역 이름을 되찾는 운동이 ‘상징의 회복’이라면

길을 바꾸는 일은 ‘삶의 회복’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 계단을 오르며 생각합니다.


“이 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면,

이 도시도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역명보다 먼저 사람을,

상징보다 먼저 이동권을,

목소리보다 먼저 발걸음을.


그럴 때 비로소

지역은 상생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길은 정책이 아니라, 마음이다


길은 단지 돌과 철이 아니라

그 위를 걷게 될 사람을 향한 배려입니다.


창원대학교가,

창원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배려의 방향으로 한 발 더 다가가길 바라며

오늘도 저는 이 계단을 천천히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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