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조금 다른 나의 입시 이야기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이 4년 동안 지속된 이유는 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꿈꿨던 건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냥 우리 담임 선생님이 좋았고,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교육자인 집안에서 자라났기에 부모님 또한 나의 꿈을 지지해 주셨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며 교대가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성적대에 맞기도 할 것 같아 더욱 본격적으로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교육봉사를 나가고,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로 생활기록부를 채워나갔다. 물론 그때도 꿈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애초에 학생으로서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정말 제한적이다. 그래도 그냥 교대는 높은 내신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진학하는 곳이니까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왕이면 서울교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공부를 해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학교당 2명에게 부여되는 서울대학교의 학교장추천전형(지역균형)의 기회가 나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된 이상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 지원하여 중고등 교사로 노선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같은 교육 분야이니, 합격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서울대학교의 입시요강조차 보지 않은 상태였고, 뒤늦게 이를 확인하고 나서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육학과는 지역균형 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0명', 즉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방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선생님과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인들도 이러한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가장 먼저 확인하여야 하는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원서 접수까지는 단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지원할 학과를 다시 정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야 했다.
첫 번째로 고려한 것은 사범대학의 다른 학과들이었다. 그나마 국어와 지리에 관심이 있었기에 국어교육과와 지리교육과를 고려하였으나, 내 전형에서의 선발 인원은 단 한 자리 숫자였다. 하나의 과목에 치우쳐져 있지 않은 나의 생기부 특성상,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 분명하다고 직감했다. 과감하게 배제!
두 번째로 생각해본 것은 생활대에 소속되어 있는 아동가족학부이다. 초등교사는 아동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분명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기부에는 아동이나 발달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주로 교육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자소서 쓸 거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과감하게 배제!
이렇게 배제하다보니 정말 지원할 학과가 없었다. 서울대학교 학교장 추천은 한 학교에서 단 2명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였고, 이과 1등의 경우 서울대 의대를 썼기 때문에 합격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다. 즉, 내가 올해 이 학교에서 서울대에 가는 유일한 1명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내가 떨어지면 0명인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정말 큰 일인데, 당시 나는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서 어이없다.
그 당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며 가장 많이 참고했던 곳이 수만휘(네이버 카페)였다. 여느 날처럼 수만휘를 뒤져보다가, 나처럼 초등교사를 지망하다가 서울대학교에 지원한 학생의 경우를 발견하였다. 그분께서 지원한 학과는 다름 아닌 '자유전공학부'였다.
자유전공학부는 원하는 학과를 두 개 골라 진입할 수 있는 형태의 학부이다. 뽑는 인원이 많았고, 선발에 있어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나는 이 자유전공학부에 지원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내가 생각보다 자유전공학부에 적합한 인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생활기록부가 약간 '짬뽕'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문과였지만 수학과학 교육동아리에 들어가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를 멋진 말로 풀어내면 '문이과 융복합 인재'인 것이고, 이는 자유전공학부의 인재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들어맞았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뒤 그 결과를 마주한 나는, 내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