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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활동에서 실망감이 이어질 때

by 성경은

우리의 시작

나와 내 연구와의 관계는 오랜 연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박사를 시작한 2013년에는 정말 열정이 가득했고, 매일 8시간씩 함께 하며, 앉으나 서나 연구 생각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났던 것이 연구였다. 우리에게 그런 찬란한 한때도 있었다.


콩깍지가 벗겨진 때

박사 2년 차가 끝나갈 무렵 콩깍지가 벗겨졌다. 내가 왜 그랬지? 싶었다. 매일 그냥 습관적으로, 지금껏 해온 일이니까, 내가 해야 하는 나의 일, 나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이어 갔다. 여전히 매일 8시간을 함께 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연구를 생각하는 것보다, 뭘 먹으면 맛있을까, 어디에 놀러를 가면 재밌을까, 딴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권태기의 극복

박사가 끝나고 짧은 포닥을 하면서 연구 방향이 조금 바뀌니까 뭔가 연구 권태기가 조금 극복되는 것도 같았다.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짧은 포닥 뒤에 지금 있는 학교에서 교수로 임용이 되고서는, 연구 이외에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연구가 애틋해졌다.


애틋한 시기

애틋한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서 연구를 하고, 틈틈이 연구를 하고, 다른 일들을 다 끝내놓고 야근을 하면서 연구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안되면 주말에도 조금 연구를 했다. 절대적으로 연구를 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이동을 하는 중이라든가 TV를 볼 때도 아이디어가 생기면 핸드폰에 저장을 했다. 다시 연구 생각이 조금 늘어났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감사한 시기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영국에서 대대적인 락다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대면 수업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온라인 수업을 하며 재택을 했고, 미팅들도 다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전반적으로 영국 사회는 병원들을 제외하고는 어딘가 멈춘듯한, 느슨하고 느려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연구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났고 꽤나 많은 연구 활동들을 할 수 있었다. 매일 4시간 이상 연구와 함께 했다. 박사 이후 가장 연구 시간이 많았던 때였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나는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첫 학회를 열었고, 첫 책을 냈고, 첫 외부 연구비를 땄고, 그렇게 또 3년이 흘렀다.


없으면 이상한 관계

2023년 정상화가 되고 나서 수업, 행정 업무, 온갖 미팅들, 보직들, 잡일들이 몰려왔다. 하루 종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가 어쩌다 오면 초심을 되찾고 즐거워 하고 있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의 빈도수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하고, 이 정도의 미지근한 우리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 애틋함도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안 좋은 건 아니다. 야근도 주말 특근도 하지 않고, 나의 소중한 개인시간을 희생하며 더 시간을 쏟지 않고, 그냥 적당히 하는 다른 일들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래도 특별한 애착은 가지고 있다. 내가 하는 일들 중에 가장 내가 많이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가장 협상과 타협을 덜 한 나의 일인 것 같달까. 내 생활과 인생에서 연구를 없앤다면 되게 아쉽고 슬플 것 같다. 학생들을 하나도 안 가르치고 살 수는 있어도, 연구 활동을 하나도 안 하고 사는 건 되게 이상할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그런 관계가 된 것 같다.


실망감이 이어질 때

이렇게 지난 12년을 함께 해온 오랜 연인 같은 나의 연구인데, 그 연구 활동에서 실망감이 이어질 때면 내가 이 학교에서 계속 교수를 하는 게 맞나, 조금 고민이 된다. 이를테면 연구비 신청서를 몇 달 열심히 써서 내서 리젝을 당하면, 그래, 리젝을 받을 수 있지, 싶다. 그런데 그 리젝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고, 리젝의 릴레이가 이어지면 아무리 쿨내가 진동하는 나여도 조금 타격감이 온다. 혹은, 어렵게 박사생한테 내부 연구비를 따서 주고 프로젝트 일을 시켜보고 그걸로 시간에 좇기며 논문을 써서 내서 리젝을 당하면, 아쉽지만 그럴 수 있지, 싶다. 그런데 또 그 논문을 수정해서 다른 학술지에 냈는데 또 리젝을 당하고, 또 학술지를 바꿔서 또 수정을 해서 냈는데 그것마저 리젝을 당하면, 얘는 학술지 논문이 나올 수 있는 아이가 아니구나, 체념하게 된다. 몇십 시간, 몇백 시간, 어쩌면 몇천 시간이 그렇게 허무하게 허공에 날아갔다. 물론 과정 안에서 배운 것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모두가 성과를 묻는 와중에 넘치는 실패의 경험들이 자랑은 아니다.


만약에

다 내가 부족하고, 열과 성을 다해 연구를 해오지도 않았으니, 리젝을 많이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껏 리젝을 받지 않고 잘 된 것들이 오히려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더 잘 된 일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더 열심히 잘했으면 더 잘 되었을 일들도 많았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조금 더 연구비 신청 과정에 적극적인 도움을 줬다면, 나보다 훨씬 더 연구비 신청 경험이 많은 교수님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면, 내가 더 연구 시간이 충분했다면, 으쌰으쌰 같이 논문을 더 잘 써줄 믿음직한 동료교수가 있었다면, 더 양질의 박사생들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혹시 더 나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디 다른 대학교로 이직을 하면 연구에 매진할 수 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넘쳐나고, 연구자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그런 연구 환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디 좋은 자리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가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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