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텅 빈 기숙사 방의 침대에 온몸의 힘을 완전히 풀고 누워 있었다. 시끄럽던 대화와 웃음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마지막 버스의 출발음 뒤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도신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각자의 집에 돌아가 주말을 보낼 수 있는 12월의 둘째 주 금요일이었다. 매달 귀가일에는 오전 수업만 진행하고 점심식사 후 바로 스쿨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아직은 대낮이었다.
나는 올해의 마지막인 이번 귀가일에 기숙사에 남는 것을 택했다. 학교에서는 귀가일에 보호자 혹은 학생의 사정으로 귀가할 수 없는 경우 기숙사에 남게 해주었는데 한 달에 한 번 공식적으로 무려 2박 3일의 외박이 가능한 날 귀가를 마다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남기 위해선 꽤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했다.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셔서 집이 비어요.”
적당한 핑곗거리를 생각해서 학생주임 선생님을 찾아간 날, 선생님은 쓰고 있던 안경을 눈 아래로 내리며 내가 내민 학부모 동의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날 심혈을 기울여 휘갈긴 부모님의 사인이 너무 티가 났나. 금방이라도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할까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땀이 났다. 하지만 선생님은 곧 동의서를 다른 종이 몇 장과 함께 클립으로 정리하고 사감 선생님께 전달할 테니 이만 가보라고 말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귀가일은 내가 매달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다. 집에 가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동생이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강아지 감자와 하루 종일 놀 수 있고, 지긋지긋한 저녁점호도 없고, 기숙사에선 철저히 금지된 배달 야식도 먹을 수 있는데 귀가일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이 모든 걸 망쳐버린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귀가하지 않기로 한 진짜 이유는 한 달 전 11월의 귀가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장대비가 내려 나는 아파트 정문에서 우리 집인 105동까지 가는 대신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기 위해 101동 쪽 지하 주차장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주차장의 코너를 돌자마자 내가 목격한 것은 이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은 아빠의 직장 동료이자 아파트 상가 베이커리 사장님의 아내로, 부부가 우리 가족과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 선생님! 하고 불러 세웠는데 왜인지 이 선생님은 매우 당황한 표정이었다. 항상 차분하던 이 선생님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전화를 해야겠다며 허둥대는 이 선생님을 뒤로하고 집에 올라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했다. 현관에 은은하게 깔린 것은 틀림없이 내가 5분 전에 이 선생님과 인사하며 맡은 그 향수 냄새였다. 엄마가 없는 우리 집에 아빠와 이 선생님이 조금 전까지 단둘이 머물렀다. 현관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지나치며 아빠는 외근 나갔다 돌아가는 길에 잠깐 집에 들렀다며 변명하듯 중얼대더니 이내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주말 내내 입맛이 없어 시위하듯 방에 틀어박힌 나를 엄마는 무척이나 걱정했지만, 엄마 얼굴을 보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서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나중엔 진짜로 온몸에 열이 오르고 자면서 식은땀을 한 바가지 쏟았고, 아빠가 몇 번 죽이며 과일 접시를 들고 내 방에 찾아왔지만 나는 쌀쌀맞게 대꾸하며 아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하염없이 울 것 같아서 아빠에게 과학 실험 프로젝트 때문에 귀가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아빠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덤덤하게 엄마에게는 잘 설명하겠다고 했다. 아빠 입에서 엄마 얘기가 나오는 게 또 싫어서 나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이불 더미로 던져버렸다.
귀가일 저녁엔 남는 인원들끼리 다 같이 모여 12층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번에 남는 학생은 총 다섯 명이었고 그중에 1학년 여학생은 나 혼자였다. 내가 살고 있는 6층엔 나만 남는다는 얘기였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침대에 누워 나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듯 눈을 감고 흰 도화지를 그렸다. 무슨 생각이 불쑥 떠오르려 할 때마다 계속 도화지에 흰 페인트를 덧바르는 상상을 하며 지워버렸다. 이러면 어느 정도 머리를 비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뜬 건 둔탁한 마찰음을 듣고 나서였다.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저녁을 먹고 금방 잠들어서인지 한 번 눈을 뜨자 바로 정신이 맑게 깼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밖의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밖은 아무 기척 없이 조용했다. 잘못 들었나,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는 순간 인기척이 들려 나는 문을 빠르게 열었다. 문 뒤에 선 누군가가 높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이연수?”
601호에 사는 옆 반 친구 연수가 쉿, 하며 장갑을 낀 손가락을 입에 대더니 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연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조용히 속삭이며 왜 이 시각에 기숙사에 남았는지 설명했다. 연수는 천체관측 동아리 ‘별 헤는 밤’의 회장으로 오늘 새벽으로 예정된 역대급 유성우를 관측하기 위해 잔류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반려당했다고 했다. 도시 불빛이 가득한 서울에서는 쉽게 즐기기 힘든 유성우 쇼를 놓칠 수 없었던 연수는 결국 귀가 버스에 올랐다가 중간 지점에서 하차한 후, 시외버스를 타고 기숙사 문이 잠기기 전 다시 숨어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같이 가자.”
연수는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서둘러야 한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얼떨결에 목도리, 장갑, 귀마개까지 챙겨 입고 연수를 따라나섰다. 두꺼운 겉옷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소리가 많이 나서 사감 선생님이 계시는 610호 앞을 지나갈 때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기숙사 건물은 전체 통행금지가 12시, 소등이 1시로 새벽 2시가 가까워진 지금 시각에는 복도의 불빛도, 엘리베이터도 전부 작동이 멈춘 상태였다. 그렇게 깜깜한 계단을 말없이 오르던 우리는 옥상 문 앞에 다다라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연주는 익숙하게 옥상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양쪽으로 제쳐 열었다. 찬 겨울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와 눈이 시큰해졌다.
“유성우는 왜 보려는 거야?”
“그냥. 기분이 좋아.”
그리고 우리 기숙사처럼 유성우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없거든, 연수는 익숙하게 챙겨온 돗자리와 담요를 옥상 바닥에 깔고 겉옷 주머니에서 핫팩을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넸다. 우리는 탁 트인 하늘을 향해 누웠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인공적인 불빛 하나 없는 까만 도화지 같은 하늘을 작고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왜 나는 1년 가까이 기숙사에 살면서 한 번도 별을 보러 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 별 하나가 시야의 오른쪽 코너에서 왼쪽 아래로 쭉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시작된다. 소원 빌어.”
소원? 갑자기 또 그날 이 선생님의 향수 냄새가 나던 현관을 나서던 아빠가 생각이 났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썼다. 방금 또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며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 앱을 켰다.
“잘 안 찍힐걸. 눈으로 보는 게 남는 거야.”
내가 찍은 사진엔 별똥별은커녕 가만히 떠 있는 별조차 제대로 촬영되지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한참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은 한두 개씩, 때로는 여러 개가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드넓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걸 보니 이 세상 모든 걱정거리가 별것이 아닌 것 같았고 이 세상에 아빠도, 엄마도 없이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내가 그렇게 떨쳐내려 머릿속에 흰 도화지를 그려가며 애썼던 복잡한 생각들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생각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밤하늘에 던져 보냈다.
한참 동안 별을 보다 점점 몸이 얼 것 같아 몸을 일으킨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별이 갑자기 나에게로 달려왔다.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밝기의 별이었다. 처음엔 다른 별들처럼 천천히 떨어지던 별은 3D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뒤 빠른 속도로 다가와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내 이마와 충돌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치던 나는 중심을 잃고 엉덩이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픈 이마를 감싸 쥐며 정신을 차리자, 연수가 옆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빠르네, 권수현. 첫 유성우 관측에 간택이라니.”
“뭐라고? 방금 너도 봤지?”
“아니, 난 네 별은 못 봤어. 네가 넘어지는 것만 봤지.”
“내 별이라니...?”
“별이 널 선택한 거야. 유성우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행운이랄까.”
연수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늘어놓았다. 별은 누구나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고, 그런 사람들에게 별이 떨어지며 ‘간택’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수도 어릴 적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게 간택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별 헤는 밤’의 동아리 선배로부터였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앞으로?”
“달라질 건 없어. 그냥 네가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네 안에 너를 지켜주는 권수현만의 별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돼. 그것만으로 꽤 힘이 되거든.”
나를 지켜주는 나만의 별이라.... 아직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든든해졌다. 우리는 연수가 싸 온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유자차를 홀짝이며 한동안 차가운 새벽공기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