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 습작의 공간이 되다.
5년 전... 가족 모두 잠든 시간 새벽... 답답하다.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올라와 거실로 나왔다.
거실 책상 밑으로 내 몸을 구겨 넣어본다. 이 집에 나의 공간이 없다는 게 슬프다.
우리 집은 30평대 아파트, 5 식구가 살았다. 시어머님 방은 안방 옆이다. 건너편엔 큰애방. 거실에서 지내지만 불평하지 않은 착한 우리 딸과 함께 산다.
시어머니와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겠지만 당연히 아들이 모셔야 한다는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주신 분이기에 자식 된 도리로 21년을 함께 지냈다. 젊은 나이에 혼자되신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거실 화장실에 애들이 사용하고 있을 때면 안방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80넘은 노인은 어느 날부턴가 늦은 밤 새벽에도 잠겨있는 안방문고리를 잡고 흔든다.
그러다 보니 부부의 사이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그런 감정이 쌓이다 보니 서로 짜증만 늘고 작은 일에도
싸우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우리 집 바로 옆동에 작은 시누이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의 시간을 가질 방법을 찾지 않았던 남편이 밉다.
큰애가 중학생이 되면서 집에 독서실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집중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간밤에 벌어진 나의 행동 때문에
언젠가 나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르바이트해서 모아둔 돈으로 큐브책상을 구입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나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꿈 꿀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간이 끝나고 3년 전부터는 드디어 본격적인 나의 공간이 되면서 마음도 안정을 되찾고 있다. 시어머니와 참 좋은 시간도 많았었는데 작은 시누이와 식당을 동업하면서 함께 지내다 보니 시누이
시집살이가 나를 힘들게 했다.
10년 만에 나의 임신 성공기쁨도 잠시, 아이가 없는 시누이는 우리 가정에 깊이 관여해 왔고 집착했으며 나에 대한 질투였는지 무슨 일이든 태클을 건다. 직원들과 웃고 있어도 본인을 비웃었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술주정도 부리고 남동생도 남편처럼 생각하고 재혼한 본인의 남편과 동생을 쌍둥이처럼 똑같은 디자인으로 자기
취향대로 옷을 입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물며 속옷까지 본인이 구입해 줄 때가 있다.
두 남자가 참 바보같이 보였다. 그래서 최근까지 나는 남편옷을 사준 적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가계 나와 일하지 않은 엄마는 ×라고 하는가 하면 나를 제외한 비밀을 만들어서 나와
남편과 아이들 우리 가족의 믿음을 깨게 만드는 일도 만들었다. 솔직히 시누이의 일방적인 횡파를 받기 전까지 15년 동안 나도 함께 서빙도 하고 주방일도 했었다. 직원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었을 때도 독립해서 내 가계를 할 거라는 목표로 참고 지냈는데 남편은 누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막내 기질이 있다.
불안한 환경 속에 아이들까지 심리상담을 받게 한 건 엄마로서 되돌릴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다.
나만 참으면 될 거라 생각하고 지내온 지난 시간들이 있었는데 엄마의 불안한 정서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엄마의 입장과 자신들의 입장, 그리고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며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회복인지 잠시 멈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전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등산, 사이클, 에어로빅, 헬스, 파워워킹, 봉사활동, 야간방범활동, 합창단동아리, 수화뮤지컬배우활동, 난타동아리, 중학교 학부모폴리스 연합단장활동, 프랑스 꽃자수모임, 여성기예 경진대회출전 시상, 공부(영양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한식 일식조리사, 떡제조기능사)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남편 옷 안사는 대신 나 자신을 위한 자기 계발에 투자했다.
코로나 이후 모든 활동들이 묶여버리고 나니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갑상선 항진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이 재발하였다. 10년 전 급성으로 발병한 이후 스트레스 조절을 통해 잡았었는데 또 재발한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정상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족모두 심리상담을 받기까지 시어머니는 시골 큰 시누이집으로 가셨고 작은 시누이와의 동업은 신도시 개발로 끝냈으며 28년간 정성 들여 지냈던 명절차례도 정리했다. 나는 시댁에서 나쁜 며느리로 찍혔지만 나를 위해 살기로 맘먹은 이후 행복해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살아야겠다.
아직도 가까이 살고 있는 시누이는 나만 빼고 나의 가족들과 함께한다.
어젯밤 브런치작가 은연주님의 ‘31 동안 31개의 글을 썼다’는 내용을 읽다가 ‘이혼연습 중’이라는 글 30화를 단숨에 읽으면서 32년의 내 결혼생활을 꺼내본다. 이렇게 사는 인생도 있구나 하고 작은 위안을 받는 분들이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