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작가님의 브런치 스토리를 읽고...
[동전부자 부자의 비애---쌍둥이 아들 행복이 들과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모아 마트에서 동전으로 결재하기 미션 성공한 경제 이야기. 행복이 들은 뿌듯해 했지만 아빠는 눈치 보며 긴장했었다는 내용에 공감했다.]
가끔 마트나 상점에서 어르신들이 동전 결재를 하면서 계산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동전이 하찮은 것이 되었는지 씁쓸해진다.
나도 키오스크, 온라인쇼핑, 인터넷뱅킹 이용자지만 카드보다는 현금을 사용하려는 준고령자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 나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슬펐다.
그리고 나는 동전 지갑을 같고 다니면서 가능한 동전을 모으지 않고 바로 사용하려고 한다. 다행히 자투리를 포인트에 적립해 주는 마트 도 있지만 그것도 사용 못하고 버리는 일이 생길까 봐 적립도 망설여진다.
20대 직장 다닐 때 일이다. 은행에서 공과금을 10만 원권 수표로 납부하려고 한적 있었다.
그때 은행원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현금으로 가져오세요!"
“.......................”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은 일로 남아있는데 ‘은행이 아니면 어디서 수표를 바꾸라는 거지?...‘
거기에 대해 반박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도 시원하게 말하고 싶다.
“그럼!... 잔돈을!... 구멍가게에서!... 바꿔 오라는 거에욧!”
요즘 아이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알려주기에 어려운 현실이다. 카드결제가 일상화되었고
인터넷 물건구입을 하다 보니 돈의 가치와 소비에 대해 쉽게 생각하게 됐다.
현금을 쓰다 보면 지갑의 돈이 쑥쑥 빠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소비할 때 생각하면서 쓸 수 있다.
큰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적은 돈이지만 매월 5만 원씩 적금을 넣어 통장을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초2 때 만기통장을 보여주며 티끌모아태산이라고 100만 원 씨드 머니를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 큰애는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재미를 알았다. 지금은 나보다 많다.
가끔은 남은 식재료 처리를 위해 '냉장고 파먹기'에 동참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간 적 있었다. 방학 때라서 그런지 지하 주창장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 정도로 주차장은 만차였다. 아빠가 주차하고 오기로 하고 아이 둘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서 먼저 내려 기다리기로 했는데 아뿔싸! 지갑과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편의점 들러 군것질 돈하고 했을 텐데 그날은 완전 거지가 되어 오매불망 아빠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편의점 앞을 1시간 정도 서성이고 있었다. 주머니를 탈탈 뒤져보니 다행히 동전 몇 개가 나왔다. 그것으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많은 인파로 물건도 없긴 했지만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고 했던 아이들이 우선 목이 마르니 생수를 사야겠다고 결정을 했고 우리 셋은 꿀맛 같은 물의 소중함을 경험했다.
그 일로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시켜야 되겠다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학원 가서 공부에 관심은 없고 선생님이 사주는 간식 먹은 이야기나 하는 둘째는 학원 안가는 대신 집에서 강의 듣게 하고 학원비를 몰래 모아 중학교 때 1천만 원 통장으로 주었다.
어느 날 지인의 아들이 OO는 엄마가 그동안 모아둔 통장을 주셨다고 자랑을 했다며 자신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엄마도 내 거 뭐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는데 당황을 했다며
"언니도 애들 위해 뭐 해놓은 거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당연하지!
주택부금과 씨드머니 통장을 만들어주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요즘은 젊은 분들이 더 잘해서 아이들 생일선물로 주식을 선물한다는 얘기도 종종 있다.
아무튼 어쩌다 외출했을 때 편하게 '외식하고 갈까 ' 하면 집에서 밥 먹자고 했던 우리 아이들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변했다. 그렇게 되게 한 방해꾼은 작은 시누이다. 본인의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조카들에게 각별하다. 사랑의 표현을 금전으로 한다는 것이 문제다.
알뜰했던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부터 집 앞에 택배 상자가 쌓이고 자주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K팝 아이돌 굿즈를 사고 아이돌이 나오는 뮤지컬 티켓도 사고 씀씀이가 난리 났다.
뮤지컬이라는 문화향유를 즐기는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아이돌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뮤지컬을 본다고 하니 참 걱정이 된다. 그동안 나의 경제교육은 헛수고한 일이었던 건가?
지금은 작아지고 잘 안 입는 애들 옷을 내가 물려 입는다. 가끔은 쓰다 남은 화장품도 아까워서 내가 바른다. 주름개선 미백효과까지 품질이 아주 좋은가보다 갈수록 내 피부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보면 가끔 이것저것 남는 거 있으면 다 내 거다.
가끔은 딸아이도 오빠가 작아져서 안 입는 옷을 입을 때가 있다. 입으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습관화가 된 것 같긴 하다.
40대 초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독거노인 분들에게 도시락 배달도 하고 말벗도 해드렸는데 노인분들 대부분 자식이 있다. 성공한 자식들도 있다. 그런데도 방임되어 있었고 정부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노쇄하고 우울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노후준비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노후는 자식들에게 짐이 안되고 손주들에게 적당히 용돈 주면서 살고 싶은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