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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주니 Dec 15. 2024

승진의 덫과 개인의 싸움

중년의 생존기


딸 : 엄마, 지난달 계속 집에 늦게 들어왔잖아.

주니 : 응. 왜?

딸 : 엄마네 회사 신고해. 근로시간 초과했어.

주니 : 무슨 말이야?

딸 : 학교에서 근로기준법 배웠어. 주 52시간 넘게 일하면 안 된대.

주니 : 그래? 엄마 그런 거 관련된 일하잖아

딸 : 그럼 잘 알겠네. 52시간 넘게 일했어. 벽 5시에 퇴근한 적도 있었잖아. 다 신고해야지.


중학교 3학년인 딸이 사회 수업 시간에서 배운 근로기준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은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신고해야 한다고 한다.


딸 : 왜 가만히 있어? 내 말 틀렸어?

주니 : 아냐. 네 말 맞아.

딸 : 신고하는 거야?


말문이 막혔다.

딸의 단순한 질문이 내 삶의 복잡함을 드러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중학교 시절, 내게 진정한 영향을 준 선생님이 있다. 

열정적으로 가르치시고, 방학마다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해주셨다. 


그 따뜻한 편지 속 시들은 사춘기 방황 속에서 내게 큰 힘이 되었고, 

내 존재가 특별하다는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덕분에 나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나는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속에서도 회사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공평하지 않은 업무와 인력 부족의 책임을 혼자 떠안으며, 내면의 회의감이 커졌다.


근로기준법을 지적하는 딸에게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 달 내내 휴일 없이 일만 하던 어느 날, 

임원이 되겠다며 견디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월급에 끌려다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밤마다 눈물이 나왔다.


사춘기 소녀의 찬란한 꿈은 사라지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티며 주름 가득한 중년의 여인만 남아 있다.


딸이 말한 근로기준법처럼, 나도  삶의 기준을 되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변화를 열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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