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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똑 Aug 24. 2024

주름 때문이야

어슬렁거리기, 책장

 
언젠가부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시시해졌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자동차 백미러에, 길거리에 늘어선 반사경에 수도 없이 자신을 비춰보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무슨 재미인가 싶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관리의 부재로 생겨버린 여러 잡티와 기미, 주름 등등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줄인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이 들어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내 마음이 바로 그 주범이었다.

‘주름 때문이야’를 쓴 작가 분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의 얼굴에 주름이 많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변화가 그림과 글에 잘 드러난다. 그림책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잘 활용한 것도 돋보인다. 특색 있는 띠지를 사용했다. 띠지에는 얼굴을 가린 손이 그려져 있고, 띠지를 걷어낸 겉표지에는 무려‘주름’진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책은 면지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책 내용에 더 많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이 담겨 있다. 표지를 넘지면 나오는 앞면지에서 토끼는 오늘도 한껏 쳐진 두 귀를 빗으로 빗어 끈으로 두 바퀴 묶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것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하나 정도는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겠지. 두 귀를 단단히 붙잡아 맨 토끼는 즐거워 보인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잘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이지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표지의 주인공은 바지는 고른 상태에서 오늘 입을 윗옷과 모자를 고르고 있다. 그림에 있는 어떤 패션 소품을 보아도 하나같이 멋스럽다. 고양이와 돌돌이를 보면서 그 둘은 운명이 단짝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파란 셔츠와 체크무늬 모자를 고른 멋진 씨. 멋진 씨는 그렇게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같은 시간에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한눈에 봐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씨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주름’의 발견. 시력이 나빠졌음을 깨닫고 새로 맞춘 안경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미처 자세히 보이게 하기 전 자신의 얼굴 주름을 잘 보이게 만들고야 만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름만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멋진씨의 일상은 점차 엉망이 되고야 만다. 주름을 없애기 위한 갖은 노력도 즉각적인 효과가 없자, 멋진 씨는 주름을 감추기 위해 애쓴다. 타인의 시선이 삶의 기준이 되도록 내버려 둔 멋진 씨가 안쓰러웠다. 평소에 자존감이 높았던 멋진 씨가 그 안타까움이 더 배가 되었다.
자아 존중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이 무엇보다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름 하나에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자존감도 수시로 관리해주어야 하는 마음은 아닐까 생각되었고, 얼른 그것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멋진 씨에게 응원을 보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전해 준 이야기에 멋진 씨는 깨닫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특별함은 우월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고유함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자신의 가치나 행복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관심도 없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절대로 이해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이나 잣대만 신경 쓰며 오늘 나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산다는 것은 따뜻하게 이해받음과 더불어 함부로 터부시되고 오해받는 고통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만약 이런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훨씬 더 유치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인생의 매 순간이 나에게 행운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기준은 감사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드디어 우리의 멋진 씨가 반사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다. 반사경에 비친 멋진 씨는 수염으로 자신의 주름을 가리고 있지도, 고개를 숙이며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있지도 않다. 자신이 가진 원래의 장점을 생각해 낸다. 옷을 고르는 데 대충이 없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안경을 쓰니 재미있는 것들도 잘 보여서 더 좋다는 것도.

앞으로 멋진 씨의 산책길은 더욱더 흥미로운 것들의 발견으로 더없이 풍성해질 예정이다. 반사경에도, 거울에도 자신을 더 자주 비춰볼 것이다. 그런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기에.

오랜만에 시시해보였던 내 얼굴 마주하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멋진 씨의 삶도, 내 삶도 단점 속에 가려진 장점 찾기로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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