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을 가르는 힘과 속도감을, 눈앞에 아른거리는 물거품의 반짝임, 물 속에 파묻혔을 때 느껴지는 고립감. 그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늘도 제스는 세 시간 째 수영중이다.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도 손녀 제스를 사랑하던 할아버지는 제스가 수영하는 것을 바라보고 계시다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쓰러진다.
조금이나마 기력을 찾은 할아버지는, 제스의 가족들에게 미리 계획했던 휴가 여행을 가자고 말씀하신다.
휴가는 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건만 일단 할아버지가 마음 먹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휴가지는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떠나온 유년 시절의 고향이다.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후 휴가지에 머물던 며칠간의 이야기들을 시간 순으로 담고 있다. 책 한 권에 단 며칠 동안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도, 그 이야기들에 이어질 뒷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금세 끝페이지를 덮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설은 흡입력이 있었다. 그것이 길거나 난해한 문장이나 화려한 미사여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담백하면서 힘있는 글은 확실히 독자들에게 와닿아 결국 살아 움직이는 게 분명하다.
제시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예감하며 그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좌절, 슬픔, 분노 등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경험한다.
제스를 비롯한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할아버지와 천천히 이별해 나간다.
갑작스레 이별을 하게 될 경우 남겨진 가족들이 느끼는 허망감이 없다는 것이 죽음에 대해 격한 슬픔을 가지지 않도록 안정감을 주었다. 책은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를 유지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분께 해줄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라도 찾아서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들, 배려하고 걱정하는 마음들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제스는 할아버지가 휴가 때 완성하고자 챙긴 강 그림에서 한 소년의 존재감을 느낀다.
평생 자신의 그림에 제목을 붙인 적 없던 할아버지가 그 그림에 붙인 제목이 '리버 보이'였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제스는 검은 머리에 검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한 소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미완성된 그림에 대한 걱정,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울고 있는 제스에게 소년은 할아버지를 도와 그림을 완성해 보라고 조언한다.
리버 보이는 어린 시절 가족을 모두 잃고 고향을 떠나온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지금의 자신의 나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를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자신의 죽음으로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손녀에 대한 사랑이 담긴 할아버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 것이다.
강물은 흘러가는 도중에 어떤 일을 만나도 결국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이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을준 어른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할아버지의 죽음은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의 순간 끝에 분명하게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고 해서 추억까지도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제스는 화장을 마치고 리버 보이를 만났던 강의 시작점에서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의 유골을 뿌린다.
강물은 흘러 결국 아름다운 바다에 가 닿을 것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인생에는 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의 생이 마감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
죽음이 가까워져 온 할아버지는 그 때를 미리 알고 계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겪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후회없이 사랑하고 후회없이 배우고 뜨겁게 강렬하게 더없이 나답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