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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 Aug 20. 2024

01 새로운 시작

말로만 하던 새로운 시작이자 인생 제2 막의 순간이 다가왔다.



살면서 힘든 순간이 참 많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다소 진부하게 첫 글을 써 보려 한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내가 우울증, 트라우마, 불면증, 불안장애가 있다는 걸 모른다.

'네가 왜?'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봤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내 일이 아니기에 쉽게 얘기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나온 말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잘하면서도 잘하지 못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선택적으로 솔직하지 않기로 택했던 것 같다. 무거운 주제이고, 그렇기에 그 무거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힘들고, 그렇기에 단순하고 가볍게 있고자 하는 성향이 대부분에게 묻어있다. 


어쨌든 이런 내가 왜 글을 쓰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세상에 대한 한탄이 아닌 나의 새로운 나날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기 위함이다. 드디어 원하던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고작 5 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나는 소위 말하는 '재능은 많지만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의 해외 유학과 대략 5 개국어 독학, 예술적 재능 그리고 끈기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왔으나, 현실은 국내 귀국 후 많은 힘든 시기를 겪으며 우울증과 불만족스러운 학력에 놓였고,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었다.

매일 같이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흔한 이유, 가정사. 

그렇게 해외 거주 경험도 있던 내게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 자체가 매우 어색한 일이 되어 버렸었다.


2023 년은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한 해일 것이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무작정 티켓을 끊고 홍콩으로 갔었던 일이 가장 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큰 영향을 끼친 아주 큰 사건말이다.

옛 홍콩 영화와 사이버펑크를 매우 좋아하는 나에게 홍콩은 살면서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한국에서 멀지도 않은 데다가, 중국어로 의사소통도 가능하니 나에겐 장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광동어를 조금씩 공부하다가 직장에서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은 후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홍콩의 빅토리아 하버 야경을 보고는 처음으로 살아있음에 행복을 느꼈다. (그 야경을 5년 지기 펜팔 친구이자 전 남자친구와 본 것은 큰 행복이었다.)


이후 나는 한 달 살기를 포함하여 그곳에 무려 4 번이나 더 다녀오게 된다.

그리고 나는 5 일 후, 그곳에 살러 떠난다. 

물론 대책 없는 이주가 아닌 해외 취업에 성공하여 비자와 함께 공식적으로 떠나는 것이다. 


홍콩의 비싼 물가와 학력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홍콩 취업은 꿈도 꾸지 못 했었다.

그런데 친구가 돌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가 홍콩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말도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이 되었다.

이력서를 넣으면 연락조차 오지 않던 내가, 어느 날 너무 화가 나 뻔뻔하게 쓴 자기소개서와 함께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올 줄이야. 덕분에 나는 홍콩으로 갈 떳떳한 이유가 다시 생겼다.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넘어갈 때 공항에서 장장 30 분을 오열했던 것 같다. 너무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각자 본인과 인연이 있는 나라가 있다던데, 나는 홍콩이 아닌가 지금도 생각한다.

언젠가 지인 3 명이 나에게 같은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꿈에서 나의 남편을 봤는데, 홍콩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세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만난 적도 없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어서 나의 남편이 될 그 홍콩 사람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조차 관심 없지만, 이렇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7 월 중순부터 비자 준비를 시작하여 한 달 동안 지낼 숙소 구하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매일 밤 잠도 못 이룰 정도로(원래 불면증이 있기는 하나, 최근엔 더 심했다.) 큰 걱정과 스트레스와 함께 지냈다. 

앞으로도 걱정할 일이 많겠지만, 적어도 입국 전까지의 이 5 일간의 시간은 마음의 준비와 짐 줄여 챙기기 등의 작은 스트레스와 함께 효율적으로 보내 보려 한다.


살면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이건 모두 내 자서전을 위한 탁월한 소재라고 생각하며 정신 승리를 해 왔기에, 제2 막과도 같은 앞으로의 나날은 이렇게 글로써 기록하고자 한다.

나 자신에게 모든 행운을 빌며 첫 포스팅을 마친다.



- 사진은 내가 침사추이에서 직접 찍은 늦은 저녁의 홍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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