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뭐길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을 겪으며 많은 다짐을 하며 살았다.
겪어 보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것들에 감정과 관심을 절대 주지 않고, 되도록이면 마주해야 하는 상황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힘든 것들 중에 나에게 늘 치명타로 다가왔던 게 있었는데, 바로 헤어짐이다.
연인 사이의 헤어짐이 아닌 사람과 지내오던 장소로부터의 헤어짐 말이다.
헤어짐이라는 게 대체 뭔지, 오랜 시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그 압박감 때문에 평소에 냉정하던 나를 감성적인 사람으로 바꾸고는 한다.
어찌 보면 참 건방진 감정인데, 쳐다도 보지 않던 것들이나 질색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사실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지도'라는 어처구니없는 되돌아봄을 유도한다. 이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장소나 물건, 모든 것에 해당된다.
어찌 됐든 나는 어린 시절 자주 해외 출장을 나가 반년 이상을 머물고 오곤 하던 아버지 때문에 헤어짐과 이별, 이런 것들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러한 감정을 줄 수 없게 마음을 완전히 차단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이, 누군가와 그렇게 떨어지기가 싫은데, 떠나야만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 세상은 왜 이렇게 되어 먹은 것일까?
물론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그리워할 것들이나 사람이 없다.
한국을 떠날 날은 반드시 올 것임을 알기에 정말 오랜 시간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너무 질렸는데, 과연 무엇을 그리워할까?
나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원하는 것을 살 수도 없어 '소소한 행복'을 강조하며 정신승리를 해 왔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정신승리가 아니기는 하다.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을 느끼며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고, 실제로 이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다만, 10대 중반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으니 시기가 맞지 않았다. 큰 목표를 두고 살아도 시원찮을 때인데 일찍 현실에 굴복해 버렸던 것이다. 한 30대 중반부터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야 제 나이에 맞는 생각을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일탈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던 덕분에 아주 작은 것들이나 모두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적인 것들을 많이 즐기며 살았던 것 같다. 추운 날의 포장마차와 어묵,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자라나는 민들레를 보던 뜨거운 여름날, 맑은 날의 남산타워,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던 가을날의 골목길, 전봇대로 어지러운 재개발 대상 주거지역 등. 그리고 20대부터는 절에서 노보살님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철야 기도를 하는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물론 나는 아직도 20대이다.) 밤늦게까지 혹은 아침까지 함께 기도를 하고 지하철 첫차로 귀가하던 순간들은 이 글을 쓰는 지금 떠올려도 평소처럼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울 것 같은 가족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데, 절 식구들과 절, 그리고 아마 나의 다음 한국 방문까지 나를 기다릴 5마리의 동물 인형들이 그리워 종종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감정을 못 느끼도록 무언가를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첫 타자로 시술을 받고 싶을 정도이다.
미술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해도 되나 싶지만, 정말 그 정도로 헤어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나에겐 굉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있어서, 좋은 일이 있어서, 가야만 해서 가는 거고,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는 신이 아니다. 고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당장 내가 홍콩으로 떠나는 것 역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죽음으로 인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 것 역시, 당연히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늘 현재가 없었다.
현재가 없으니 나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자'라는 말을 '오늘 신나게 먹고 놀고 죽자, 언제 뒤질지 모르니까!'로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일 또 보자며 방금 인사 나눈 사람을 내일부터 못 보게 될 수도 있고, 매일 나갔다 오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던 강아지가 오늘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누구와도 '어차피 또 만나게 될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그 순간이 슬프고, 홀로 걸어가는 순간에 또 한 번 슬퍼지고,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우울해진다.
나의 감정은 이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굳이 '왜 그렇게 슬퍼하냐'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헤어짐에 무덤덤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
오늘은 비록 쫓겨났지만 많은 기억들이 묻어있는 나의 목동 집과 나의 10대 때부터 함께 나이를 먹어 이젠 노견이 된 이모의 푸들, 코코를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꿈나라로 밀어 넣어보려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악몽을 많이 꿨었는데, 이젠 스트레스의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었는지 아무 꿈도 꾸지 않는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면 다른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떻게 짐들을 홍콩으로 가져갈 것인지 곧장 고민에 빠지고 있다. 벌써 일주일째 이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생수 6병짜리 팩도 겨우 드는 내가 24인치 캐리어 하나, 기내용 하나, 백팩 하나로 홍콩에 도착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지럽다.
사람이 짐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솔직히 해외로 이주를 하면서 이 정도 짐만 가지고 가는 건 매우 적은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놀랍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러면서도 그냥 24인치 캐리어를 하나 더 사고 미술용품들도 모두 가져갈까 고민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것에 정신을 내어주고 헤어짐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 번은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을 그냥 전부 극도로 혐오하면 헤어짐의 순간에 슬픔을 못 느낄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더 슬프지 않을까.
- 사진은 남산타워를 향해 걸어가던 길에 찍었다. 몇 년만에 온 것인지, 마음이 따스해졌었다. 어린 시절 근처에 살았었고, 첫 직장 역시 근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