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너인걸 이제는 알기에
네가 없는 열일곱을 보내고 나는 벌써 열여덟이 되었다. 너의 시간은 멈춰있는데 나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내 일상 속 네가 그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뿐인데 나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있다. 네가 존재하지 않는 나의 열여덟은 아직까지도 어색하고 아팠다. 무너지던 와중에도 네게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기에 작년 말쯤 미리 다이어리를 샀다. 열여덟이 되던 새해에 너에게 편지를 꾹꾹 눌러쓰며 보고 싶다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을 수십 번을 넘게 적었다. 평소와 같이 일상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수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던 내가 수학에 흥미를 잃었다. 너와 함께 통화하며 문제를 풀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너를 놀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였을까. 집에 앉아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는 날이면 자꾸만 네가 떠올라 문제집을 결국 얼마 풀지 못하고선 덮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개학을 하고 학교에 갔을 때 원래였으면 이과로 가고자 했으나 문과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이과에 가고 싶었지만 가게 되면 네가 너무 많이 생각날 거 같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거 같았다. 학교친구들은 나에게 왜 이과로 오지 않았냐 왜 이과로 안 가고 문과로 왔냐는 질문을 계속했지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에게 “그냥”이라고 얘기를 했다. 문과로 오고 나서도 종종 한국사 수업을 들을 때면 네가 생각났다. 내가 어려워하는 사회과목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려고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한 멘트를 찾아와 성대모사를 해주던 너였는데 그런 너는 이제 없다. 네가 예전에 장난쳐주던 멘트들을 한국사책에 끄적이며 살며시 웃다가도 슬퍼진다. 그래서인지 이런 수업을 들을 때면 가끔씩 네가 너무나도 간절해지기에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가라앉아버린다. 결국 난 수업을 듣지 않고 엎드려버리고선 창밖을 쳐다본다. 현재 내가 있는 이곳이 네가 존재하지 않고 나만 있는 나의 인생들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분명 수학여행도 가고 체육대회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며 방학 때 친구들을 자주 만나 놀기도 했다. 분명 중간중간 재미있는 일들은 있었지만 즐거움에 비해 내 인생은 너무 무의미하다. 내 꿈을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도 지쳐갔다. 계속되는 실패에 대해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네가 없어서였을까 너의 말이 너무 그리워서 죽고 싶었다. 죽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보니까 안쓰럽고도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서 함부로 미워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흐르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던 엄마의 모습도 이젠 없다. 아빠는 엄마만 챙긴다. 그냥 그때부터는 완전히 나를 숨겨버렸다. 원래도 이야기를 잘하지 않던 내가 사소한 것들마저도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위태로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를 상자 속에 숨기고선 잠그고 도망쳐버렸다.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학원에 다니는 것을 핑계로 매일밤 학원을 마치면 너와 내가 함께 했던 놀이터 그네에 앉아 한참 동안 멍을 때리다 엄마, 아빠가 다 잠들 시간쯤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서 정말 네가 그리워서 죽고 싶은 밤이면 평소와 같이 책상 앞에 앉아 네게 일기를 쓰고 나서 뒷페이지로 넘겨 그 페이지종이를 까맣게 칠해버렸다. 날 두고 가버린 네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미운 널 생각하다가도 한 날은 너무 애틋해서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며 울고 한 날은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네게 사죄를 했다. 그런 무의미한 하루들을 매일같이 보내다 갑작스럽게 정말 죽고 싶다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손목을 그었다. 솔직히 아프지도 않았고 이 정도로는 죽을 거 같지도 않았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계속하게 되었다. 피가 흐르는 모습이 제법 내가 살아있는 거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목에는 점차 여러 개의 칼자국이 생기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손목보호대를 착용하며 지냈다. 손을 쓰는 사람이 손목이 아픈 게 이상하지 않았기에 보호대를 착용해 나를 숨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한 날 멍하니 침대에 앉아 손목에 남은 상처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날 보며 네가 슬퍼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고 너는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 마냥 참 아이러니하게도 장마가 미친 듯이 쏟아져왔다. 네가 슬퍼하는 것만 같았다. 자꾸 이 세상에 없는 너를 끄집어내서 집어넣고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너무 싫었다.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그날밤 집에 들어가 뾰족한 물건을 다 치웠다. 치운 다음날 너는 나에게 잘하기라도 했다는 듯 잠깐 비를 멈추었다. 네가 없는 열여덟은 너무도 괴로웠다. 네가 응원해 주었던 꿈도 계속되는 실패에 어느 새부터 숨이 막혔다. 전처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아닌 숨이 막히는 기분에 내가 살 구멍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 다음날 학원에 가지 않고 그냥 바로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가서 끊임없이 무언갈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공허한 마음에 토할 때까지 음식을 미친 듯이 먹었다. 자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먹기만 했다. 그렇게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학원에서 나를 불렀다. 가기 싫었지만 억지로 몸을 움직여 학원으로 향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나를 앉혀놓고선 잔소리를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손금을 봐주시며 장난을 쳤다. 재능이 타고나서 다음 시험 때 합격을 하겠다며 웃으셨다. 그런 장난치는 모습에 네가 불현듯 스쳐 지나가며 이런 내가 부끄러워졌다. 다시 한번 너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고자 마음을 다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험을 다시 도전했는데 정말 합격했다. 추워진 겨울 네가 없이 이뤄낸 나의 첫 도전을 눈을 감고 여기 존재하지 않는 네게 보낸다. 그 후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조금씩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너의 기일에 맞춰 꽃도 샀다. 꽃을 사들고 놀이터에 있던 우리의 아지트에 꽃을 두고선 널 위해 간절하게 작년에 전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네가 이젠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집에 돌아와선 곧 다가올 내년의 다이어리를 골랐다. 다이어리가 새로 배송 올 때쯤 쓰던 다이어리를 상자 속에 집어넣었다. 상자 속에 쌓인 종이를 보니 네가 떠나고 홀로 보낸 시간들이 참 야속하고도 빠르게 흐르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네가 없이 나 홀로 보낸 사계절이 벌써 두 번이나 지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