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산사山寺 / 허진년
색 바랜
먹물 옷소매에
걸림 없는 생사生死이나
요란한 단풍들이 계절을 돌아서니
큰 뜻도 싫다는 것을
이내 마음인들 어찌 하겠나
녹슨 풍경은 자기 뺨을 때려 울고
허공을 가르는 죽비는
제목소리로 경계를 뚫고
휑하니 스쳐 지나는
반야般若에게 어디 가느냐
물어 보고 싶어라
불이문不二門을 넘어 서는
홑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그림자 일렁이지만
탱탱한 내 육신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구나
엎드려 보내는 마음마저
대낮 같이 알아차리는 법으로
속일 수 없는 참마음을
빈 바랑에 채우려 나서 보니
저만치 앞서 가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