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읽어왔던 소설과 편지에 영향을 받아
제가 지금 밟고 있는 땅의 소식을 전해드리고 나서 안부부터 여쭙고자 합니다.
날이 꽤 추워졌습니다. 그래서 장갑을 하나 샀어요.
손끝이 시려우면 마음도 으슬으슬해지는 것이 마치 연결된 것 같아 신기합니다만, 어쨌든 손끝이 추우면 갈비뼈 안쪽도 부르르 떨려와서 추운 날 장갑이 필요해졌지요
가을까지만 해도 반팔을 대비해서 입고 다녔는데, 무섭도록 빠르게 변해버린 날씨에 마음도 적응을 못하나 봅니다. 아직도 여름과 가을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더 춥고 유난히 더 무기력하고, 적응하지 못한 듯 움츠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 서겠죠.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러워 예상하지 못한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올 한 해, 세상은 그렇게 유난히 슬퍼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예상치 못한 슬픔에 우산을 챙겨 나가지 못해 젖었습니다. 하도 자주 울어 말릴 틈 없는 날도 있었다지만,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웃다가도 화내듯이 쨍쨍하여 무엇이 그렇게 변덕을 부리게 하는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느새 또 겨울이 찾아왔는데 어떤 계절을 가장 사랑하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겨울도 사랑하셨을까요
한 번쯤은 여쭤볼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계절을 사랑함에 이해가 없던 터라
묵묵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태어나 사랑의 이해가 완성되지 못했음에 원망을 하지 못하지만, 아쉬움에 겨울바람이 흉통을 쓰다듬고 갑니다.
제가 여쭙지도 못했지만, 대답도 않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말 수가 워낙 적으셔서 이제는 흙에서 뽑혀 나온 나무뿌리 같았다며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수가 적으신 게 아니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이 헷갈리니 더 뵙고 싶습니다.
잘 지내시냐 정말 묻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대답이던 듣고 싶습니다.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였습니다. 가끔은 잊고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라지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적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잊고 살긴 하였으나 잃어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한 낮 천 쪼가리 찢기듯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손과 바늘과 실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으니까요. 낡디 낡아 재가 되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는 묻어두는 것입니다.
새해가 밝고 새날의 아침이 뜨면 또 제가 한걸음 가까워져 갑니다.
인생은 어떠한가요. 지구처럼 둥글던가요. 혹은 강처럼 흐르는 것이던가요.
혹은 산처럼 경사지고 바다처럼 넓고 깊이 빠져들던가요.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쌩쌩 부는 바람에 온몸을 휘어 감아 여매어도, 마음에 드는 찬바람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시들 거리는 심장에 어떻게 하면 온기를 더해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차다는 것은 뜨거운 것과 또 다른 고통인 줄 이렇게 알게 되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지만
이제 저는 뜨거움에 데어도 보았고, 차가움에 얼어가는 고통도 알았으니 스스로를 따스히 감싸는 법도 배우게 되겠지요. 함께한 시간이 부족하여 가르쳐 주신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남겨주신 것은 이렇게나 많습니다.
어릴 적에는 탈을 보면 생각나는 얼굴로 다가가기 어렵지만 그 주름이 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웃으면 주름이 많이 지거든요. 젊을 적에 많이 웃으셨다 생각하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도저히 닿지 않았던 것 같던 그 머나먼 거리가 조금 좁혀질 때쯤
저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냐 묻지도 못하게 되어 서럽기만 하고 죄송스럽기만 하지만 모든 것은 잊히는 한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반절도 살지 못하였는데, 그 짧은 평생토록 쌓인 말을 풀고자 하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그곳에서는 사계절을 다 사랑하시고 있으실까요
좋아하는 반찬 하나, 젊은 시절 이야기 하나뿐인 이 조그맣고 소중한 기억이라도 있어 참 다행입니다.
저는 오늘 새로 산 장갑을 끼고 나왔습니다.
아침에 한기는 하늘이 아닌 땅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추우시지 말라고 바라보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처음 써보는 편지에 이렇게 다 하고 싶은 말 적어내니 더 그립습니다.
할아버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