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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Seat Belt"

by Tony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미국 이민 초 이야기 하나 풀게.


우리 가족이 뉴욕으로 이민 온 다음 해에, 사촌 누나네 가족도 우리 집에서 차로 5분도 안 되는 같은 동네로 이민을 오게 되었어.


어느 날 아침, 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우리 엄마한테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거야.


"이모, 아침부터 짜증 나게 인종차별 당했어. 그것도 경찰한테!"

"왜?"

"오는 길에 경찰이 따라오더니 내 차를 세우는 거야.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Why?' 하고 물었어.

그랬더니 갑자기 욕을 하더라고! 그것도 한국 욕으로 찰지게 ‘씨팔, 씨팔’ 이러는 거야! 완전 기분 나쁘게 진짜...!"


누나는 씩씩대며 소파에 털썩 앉았고,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숨 푹...


혹시나 싶어서 내가,


"딱지 뗀 거 보여줘 봐." 해서


누나가 내민 교통 위반 딱지를 확인해 보니, 거기에 Violation Code(교통법규 위반 번호)가 적혀 있고. 뒷면에 찾아보니 Seat Belt(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적발된 거더라고.


"앁밽(Seat Belt)! 앁밽(Seat Belt)!"


경찰이 욕한 게 아니라 안전벨트 안 매고 운전하다 위반해서 걸렸던 거더라고.

그제야 우리는 상황을 이해하고 한참을 웃었지. 누나도 어이없어서 웃고, 엄마도 웃음 못 참고,


"야, 아무리 그래도, 경찰이 널 보고 한국말로 욕을 할 리가 없잖아?"

sticker sticker


요즘 자동차들은 안전벨트를 안 매면 '땡땡땡땡' 경고음이 울려서 바로 알 수 있지만, 90년대 초반 당시 미국 차들은 벨트를 안 매도 조용했거든. 게다가 우리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안전벨트를 매면 쿨하지 못한 느낌이라 안 매는 게 더 멋있었던 시절이 있었거든.


… 참고로 우리 사촌누나는 미국에서 목사님 사모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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