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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원장 Aug 26. 2024

변신

창조의 독

힘든 경기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발가락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채 완전히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그러던 찰나 다시 공격수가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얼굴에 살짝 편안한 감각이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뚫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싶기에 갑자기 오기가 생겨 이번에는 어떻게든 막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그와 내 발을 둘러싼 어두운 세계가 열릴 때, 순간 안간힘을 써서 대뇌 피질이 새까만 무기력을 뚫는 강한 신호를 보내는데 집중했고 마침내 찬란한 무지개가 펴짐과 동시에 발가락이 공에 닿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다.

돌처럼 단단하던 발가락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굉음으로 시작하여 뼈과 살 동시에 으깨지는듯한 극렬한 고통과 함께 굉장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를 동시에 터뜨려 버리는, 마치 온몸에서 점액질이 흘러나오는, 정신을 잃을 만치의 강력한 쾌감이었다.  고통과 쾌락은 점점 심해졌다. '그것은 마치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고통과 흡사하다. 아니 완전히 똑같다. 즉 이것이 바로 산고다!!'라고까지 느꼈다.. 고통은 극에 달했다. 누군가 인간의 것이 아닌듯한 비명소리만 들렸을 뿐 (그것은 분명히 세계의 소리는 아니었다.) 그 극점에 있어서 나는 그 순간을 지연시키고자 만 하는 뜨거운 열망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다의 조용한 물결 위에 고요히 떠있는 느낌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 순간 최고봉에 달하자 미칠 듯한 고통만이 덮치기 시작했고 그리고 다시 어떤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발가락은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발가락의 자리 새로운 것이 나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자 운동장 펜스 쪽에 누워있었다. 발가락 쪽에서 야릇한 기분이 들어 양말을 벗어 보았다. 엄지발가락이 양쪽으로 갈라져 마치 가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비유하자면 집게 같기도 했다. 새로운 것이었다. 약간 발가락을 놀려보았다. 집게는 움직였다.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가능했다. 돌을 집어보았고 이어서 손톱을 잘라 보기도 했다. 날카로운 날은 (그 모양은 약간 불쾌했지만) 어디에도 잘 드는 편리한 도구와 같이 느껴졌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이상한 것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두려움 가운데서도 은밀하게 강한 힘을,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날 듯한 자유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고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양말을 신으려 하자 집게 쪽이 뾰족해서 잘 신어지지가 않았다. 기어코 구멍을 내서야 들어갔다. 다시 축구하러 위치로 왔다. 살짝 뛰어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굉장한 찌를 듯한 고통이 아무런 쾌감 없이 밀려들어왔다. 다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발에서는 엄청난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집게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을 자르고 만 것이다. 집게 발가락의 이상한 모양이 다른 발가락의 단두대 역할을 한 것이다.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 실려 간 후 의사는 난생처음 본 창조자의 첫 창조물을.. 침착하고 단호하게 잘라 버리고자 했다. 자르기 전에 집게 발가락쯤은 이제 놔두어도 유용하지 않을까 하고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만약 집게 발가락을 잘라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품은 독성으로 생긴 염증이 온몸으로 퍼져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탄생할 때 숨겨두었던 암흑 속의 독소가 이젠 내 육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로운 기능은 기존의 신체와 어울릴 수 없었다. 결국 변신은 실패로 돌아갔다.


과연 이런 식의 변신은 내가 꿈꿔왔던 것일까. 원한다면 신체까지 바뀔 수 있는 능력, 이러한 위험한 바람은 그런 것을 꿈꾼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이 강해져 감과 동시에 그 은밀한 쾌감에 몸을 떨며 그에 대한 열망도 점차 간절해져만 갔던 것일까 두뇌에서는 끊임없이 한 가지 바람을 형상화하면서 온몸의 뜨거운 쾌감과 열망을 양분 삼아 원자 수준의 까지의 보다 구체적인 실체를 얻어나가면서 그것을 가느다랗게 흐르는 혈액과 림프액에 타 보냈던 것일까. 결국 추상적 실체에서 물적 확신까지 가지게 된 하나의 창조된 형상은 결국엔 몸의 끝자락에 다다라 기어코 발가락을 부시는 독과 함께 그 자리를 꿰차게 된 그런 것이었을까. 의지가 결국 강렬한 육체적 변신(變身)에 이르게 한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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