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후, 사진이 잘못 나왔어요.
사람 얼굴만 나왔네. 다시 찍어야겠어요'라고 여성이 말하자
'좀 조용히 해'라고 남성분이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내가 뇌경색으로 몸이 좋지 않아 재활치료를 겸해서 산을 열심히 다니던 때였다.
혼자서 산에 자주 갔다.
처음엔 관악산, 삼성산 위주로 갔지만 후엔 북한산으로 바꾸어 다녔다.
어느 날, 삼성산을 혼자 등산하여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건물로 가득 찬 서울대와 높고 낮은 산과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서울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단체로 등산을 온 사람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전망대로 올라왔다.
조용히 즐기고 싶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자리를 옮기기 위해 전망대를 내려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단체 등산객 중 여성 한 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곤 ‘사진 참 못 찍는다’고 놀리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웬만해선 다른 사람이 사진 찍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을 외면하거나 눈치껏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 날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기 전에 자리를 피하기 위해 미리 전망대를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 여성분이 선수를 친 것이다.
좁은 계단으로 나가는 방법 외에는 전망대를 벗어 날수 없었는데, 계단 입구는 단체 등산객들이 막고 있었고, 그 전망대엔 단체로 온 분들 외엔 나 밖에 없었기에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여성분이 준 핸드폰을 받아 들고 열너댓명 쯤 되는 단체등산객의 사진을 찍었다.
좁은 전망대에서 난간에 둘러 쌓인 등산객들이 카메라 안에 가득 들어왔고, 나는 최선을 다해 얼굴 하나하나 카메라에 선명히 잘 담기도록 정성스럽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후 그 여성분께 카메라를 돌려줬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전망대를 내려가려고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내게 카메라를 준 여성과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주고받는 대화소리가 나의 귀를 때렸다.
사진이 엉망이니 다시 찍어야 한다는 대화였다.
아마 카메라속에 사람 얼굴만 가득 담긴 사진을 보고 한 말인 듯했다.
뒷배경인 아름다운 산과 도시는 무시한 채 힘들게 산을 오른 사람 얼굴만 가득 담아뒀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정성껏 사진을 찍었음에도 그런 소릴 들으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사진을 찍은 후 자주 들어온 얘기라 애써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산길을 재촉하여 한참을 가다 싸온 도시락을 먹기 위해 너른 바위에 앉았다.
산에서 혼자 산들바람 맞으며 도시락 까먹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
그렇게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푸른 산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도 보며 점심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남녀 두 분이 내게 와서 '사진 좀 찍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런, 오늘 무슨 날인가?’
순간, 조금 전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시선을 피했다.
지금도 서울대 근처를 지날 때면 그때 그 씁쓸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짓곤 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나는 과거 따위엔 연연해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가 소중히 간직한 추억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간직한 사람은 아름다운 미래를 보낼 수 있다.
그 추억들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양분을 제공한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 등등과의 추억들.
좋은 추억은 좋은 대로, 불쾌했던 추억은 불쾌한 대로 그 의미가 깊다.
항상 일에 파묻혀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일 수록 영혼과 육체를 맑게 해주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까운 곳을 찾아 혼자 사색하며 새로움을 경험하는 여행도 좋고, 친구들과 호호하하 떠들며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여행도 좋다.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우리나라 도서지방이나 해외 먼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다
혼자하든 함께하든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면 족하다.
직원들과 눈 덮인 산을 등산하던 추억, 낚싯배를 빌려 주꾸미 낚시하던 추억, 직원들과 밤새도록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재미나게 이야기 꽃을 피우던 추억 등등 내게 즐거움과 소소한 의미를 주는 수많은 추억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힘이 될 테니...
이 모든 것 중 나는 가족여행을 강력히 추천한다.
가족과의 가슴 뿌듯해지고 벅차오르는 추억은 모든 힘의 원천이다.
집에서도 매일 보는 가족인데 또 밖에서 몇 날 몇 일을 얼굴 맞대고 있어야 하나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 보는 가족과 여행가서 마주하는 가족은 또 다르다.
처음보는 풍경을 함께 즐기며 그 풍경을 주제로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몇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러다 미리 검색해 본 맛집을 찾아가면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며 서로 그 마음을 털어놓는 재미, 실제로 먹어본 후 기대에 못 미치면 다같이 가볍게 음식을 욕하며 웃는 재미 등등 수많은 즐거움과 추억이 있다.
올 해 초에 큰 맘 먹고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7,8개월을 준비한 가족여행이었다.
나와 아내, 딸이 먼저 체코로 가서 오스트리아, 스페인을 여행한 후, 프랑스에서 아들과 사위를 만나 함께 추억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회사를 다니는 아들과 사위는 휴가를 많이 사용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중간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모든 스케쥴과 예약은 딸의 몫이었다.
이런 추억여행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접을 정도로 여행에 진심인 딸이다.
아내와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딸만 믿고 따르면 되는 편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딸의 마음은 좀 달랐다.
부모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부모님과 여행가서 많이 싸운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딸의 통솔을 따르지 않고 싸우면 어쩌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우린 전적으로 대장 말을 따르겠다’고 여러 번 맹약을 하였지만 크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여행출발을 몇 달 앞두고 가족회의를 했다.
딸은 여행 스케쥴을 빼곡히 적은 프린트물 몇 장씩을 주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언제 이렇게까지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세부적으로 적혀 있었다.
진짜 여행에 진심인 딸이었다.
그런데, 나눠준 용지 중에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여행중 이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경고성 요구사항을 적은 종이었다.
‘아직 멀었나, 꼭 가야 하나 부터 맛이 왜 이래, 여긴 별로다’ 등등.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오는 금기어들이란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을 24일 동안 단 한 번의 트러블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회사일을 핑계로 2,3일씩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는데 거의 한달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을 하는 것은 큰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직장동료나 지인들에게 여행 다녀온 자랑을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부럽다’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직장인이라면 회사 눈치, 동료 눈치를 보느라 길어야 일주일 정도 휴가를 쓰는데 너무 오랫동안 휴가를 쓴 것에 대한 부러움과 궁금함이 묻어나는 질문들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긴 여행도 우리에겐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길고 긴 시차적응을 마친 후 앨범을 정리하였는데 수천장의 사진속에 24일간의 예쁘고 아름다운 여행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추억사진을 정리하며 사진속의 순간들을 다시금 되새김질하듯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런 추억들은 카메라에 담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
필름 카메라시대에는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할 수 없어 현상하고 난 후에야 '아이고, 왜 이렇게 흐릿하지. 구도가 왜 이렇지' 라며 아쉬워하지만, 그 또한 앨범에 고이고이 모셔 두고 명절때나 특별한 기념일에 펼쳐보곤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나온 이후에는 필름 카메라일때 했던 고민은 많이 사라졌다.
과거와 달리 아름다운 추억을 맘껏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흐릿하거나 구도가 맞지 않으면 다시 찍으면 되고 만족스럽지 못한 사진은 핸드폰의 다양한 기능을 이용해서 편집하면 예쁜 모습으로 바뀐다.
이렇게 나름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공유 폴더에 올려 함께 관리하며 수시로 그 순간을 즐긴다.
그 행복한 여운은 오래오래 지속된다
회사일로, 아이들 공부 때문에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핑계는 접자.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할 나나 사랑하는 가족에게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우선 순위에 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내일의 추억이다.
지금 행복하면 내일은 더 행복하다.
내일의 행복에 추억의 행복이 더해지니 당연할 수 밖에…
지금 하나의 추억을 만들면 내일 하나의 행복이 더해진다.
지금 많은 추억을 만들면
내일은 행복 더미속에 즐거워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추억은 행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