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직원들이 묻는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나도 가끔 그런 질문을 동료들에게 한 적은 있지만 딱히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의 취지가 어떻든 다시 한번 살아온 시간을 생각케 하고 감정의 살을 찌우게 한다.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은 추억이든 추억은 그 차체만으로 행복이 있고 설레임이 있다.
비오는 여름날,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옛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행복이다.
밤새 내린 많은 눈에 활처럼 휘어진 대나무 숲 길을 걸으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행복이다.
몇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바닷가에서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태양을 품에 안으며 반짝거리는 바다 위를 지나가는 조그만 배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도 행복이다.
추억은 행복이다.
추억은 영혼을 유쾌하게 한다.
추억은 인생의 그림자다.
인생이 춤추면 추억도 춤춘다.
더 즐겁게, 더 열정적으로.
추억 없는 사람은 그림자 없는 죽은 사람이다.
몇일 전
함께 근무했던 젊은 직원들과 등산을 갔다.
벌써 일선에서 물러난 지 한참 지났지만 나를 찾아주고 흔쾌히 함께 산행하자고 말해준 후배들이 고맙다.
이미 몇차례 같이하는 산행이다.
이번에는 관악산을 등산하기로 했기에 사당역에서 만났다.
지난번처럼 산행 전 스벅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우리 산행은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 자유로운 산행이다.
올라가다 힘들면 쉬고 더 힘들면 그냥 있는 길 따라 내려오는 그런 산행이다.
다들 오랜만에 등산을 해서인지 숨을 할딱거린다.
우린 거북이 등산하듯 천천히 산을 올랐다.
쉬다 가기를 여러차례 한 후 경치 예쁜 곳에 자리를 펴고 각자가 가져온 음식물을 꺼내 놓았다.
막걸리는 기본, 전과 육포, 과일 등 많은 음식물이 쏟아져 나왔다.
펼쳐 놓으니 잔치상이다.
산행을 왔는지 먹으러 왔는지 구분이 안될 지경이었다.
우린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렇게 많은 음식물이 나올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는 눈치다.
막걸리 한 잔씩 들어가자 옛날얘기가 봇물 터지듯 나온다.
그냥 일상적인 것들인데 함께 추억을 나누었던 얘기들이다.
한 직원이 말한다.
‘그 때 매주 사무실에서 가졌던 햄버거 데이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러자 다른 젊은 직원이 말한다.
‘더 이상 햄버거 데이를 하지 않아 다들 섭섭해합니다’
햄버거 데이란 그냥 직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거창하게 이름을 붙인 것인데, 매주 금요일 점심 때 햄버거를 사서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먹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날을 말한다.
햄버거를 먹으며 여행 다녀온 경험담이나 테레비젼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그리고 가족이야기 등을 얘기했는데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말한다.
1년 이상 그렇게 하다 보니 회사 주변에 있는 햄버거 중 우리 입맛을 거치지하지 햄버거는 거의 없었다.
그룹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함께하다 보니 거의 대부분 직원들은 몇차례
씩 햄버거 데이에 참석했다.
적을 때는 일곱 여덟 명이 참석했고 많을 때는 열 두세명이 함께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서먹했던지 직원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자연히 가장 나이 많고 직급 높은 내가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직급차이가 많이 나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서먹한 분위기를 재밌게 만들기 위해 요즘 트렌드에 맞는 이슈를 찾고 많은 말을 해야 하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괜히 햄버거데이를 만들었나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한 명 두 명 말을 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 정통하거나 여행에 일가견 있는 친구들은 드라마와 여행 이야기를 했고, 아이를 키우는 직원은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하고 힘들었던 경험담을 열심히 늘어 놓았으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직원은 그 즐거움을 공유했다.
많은 친구들이 웃고 떠들며 얘기하다 보면 한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가능하면 금요일에는 햄버거데이를 위해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약속이 생겨 하지 못하게 되면 직원들은 다음주에는 할 수 있는지 아쉬워하며 물어보곤 했다.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는 꼰대 상사와 함께하는 시간을 거리낌 없이, 오히려 기다리며 참석해 준 직원들이 내게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은 내게도, 함께해준 직원들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만큼은 평범한 삶을 공유한 추억이 되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점점 개인화되어 가다 보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러한 추억은 말 할 것도 없이 어느새 홀로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벌써부터 홀로 있는 것을 즐길 필요는 없다.
청춘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 전에 운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면 좋겠다.
여행, 캠핑, 풋살, 독서를 함께 해도 좋고, 주식ㆍ가상자산이나 부동산을 그룹 지어 공부해도 좋다.
어떤 것이든 함께 공유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그런 활동에 나자신을 던져 넣어버린 순간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했던 모든 동료들의 가슴속에 그 순간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가열차게 활동하던 회사생활이 끝나고 나면, 사회적 지위가 높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 둘 친구들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함께하는 것은 행복이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서울에서 차를 너댓시간 달려 도착한
푸른 동해 바닷가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벌써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 많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았지만,
여전히 그 친구의 학창시절 모습은 남아 있었다.
항상 어깨엔 책이든 가방보다 기타를 메고 있었던
그 땐 그리도 집과 학교에서 혼난 친구였건만,
지금은 어엿한 사업체를 가진 사장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처럼 웃고 떠들며 보낸 몇 일
우린 다시 그때 그 시절 학교 교실로 돌아와
우정으로 얽힌 인연의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마치 매일 만난 친구사이처럼…
인연의 끈은 추억으로 만들어져 있다.
추억은 행복의 바구니에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