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슬픔이 더 많은...
나의 첫 월급은 세전 90만 원이었다. 앞에 1이 하나 빠진 게 아니냐고? 제대로 본 게 맞다. 90만 원. 당시 막내 작가들의 월급은 80만 원~100만 원이라 90만 원은 첫 월급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지금 시작하는 방송작가들의 월급은 최저임금에 준하는 금액이다. 물론 야근 수당 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시 야근 수당을 제대로 잘 챙겨주는 곳이 있다면 부럽다.
내가 처음 일한 곳은 선유도의 한 제작사였다. 당시 사회 경험이 없던 나는 인터넷으로 면접 예의 등을 알아봤었는데, 면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도 진정하면서 기다리다가 10분 전 방문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면접 10분 전 회사에 갔는데, 메인 작가는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타박을 했다. 그날 우리는 만난 지 3분도 안 됐다. 그 뒤로 나는 다른 프로그램 면접을 볼 때 버릇이 생겼는데, 빨리 도착해 주변을 서성이다 5분 전 도착 연락을 하게 됐다.
어쨌든, 만난 지 3분 만에 타박하는 메인작가를 보고 당장 도망쳤어야 했는데 나는 눈치가 더럽게 없었다. 나는 방송에 대한 내 열정을 최대한 어필하며 면접을 봤고 그렇게 방송작가가 됐다.
떨리는 맘으로 첫 출근을 했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다. 짧지만 작가 인턴도 했는데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위에 작가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처음인데 뭘 알겠나. 그저 눈치만 보면서 실수만 계속했다. 오후 8시. 퇴근 시간이었다. 그것도 위에 서브 작가가 첫 출근이니 빨리 퇴근하라고 한 시간이었다. 그 후로 그만두는 날을 제외하고 8시보다 빨리 끝난 적은 없었다. 정말 걸핏하면 밤을 새워서 일을 했다. 한 번은 연속으로 3일 밤을 새웠는데 그때는 정말 몸이 녹아내리고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씻지도 못해서 3일 밤을 새우고 퇴근하는 날 같이 지하철을 탄 승객들에게 미안했다.
회차가 정해진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는데, 4개월 동안 일하는 동안 내 위의 서브 작가가 5명이나 바뀌었다. 마지막 회차에는 서브작가도 없었다. 개고생을 했단 얘기다.
기대하던 월급날이 됐다. 세금을 떼니 87만 몇백 원이었던가.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무려 2000년대 후반 유행했는데 내가 받는 돈은 그것보다 조금 모자랐다. 그마저도 대표님이 지금 사정이 어려우니 50만 원만 먼저 주고 그만둘 때 4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한 달 동안 개고생하며 일한 대가가 50만 원이라고?
당시 친척집에서 살아 집값은 들지 않았지만 생활비는 열심히 벌어야 했다. 하루 걸러 밤을 새우니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도 많이 탔다. 아무리 아껴도 50만 원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취업을 했지만, 엄마한테 용돈을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달은 90만 원이 지급됐다. 정확히는 87만 얼마얼마... 그 뒤 월급도 떼 먹힐까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일을 그만둘 때 초반에 받지 못했던 40만 원을 추가로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40만 원은 어쩌면 그만두지 못하게 잡아두는 볼모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첫 프로그램을 무사히 끝내고 프로그램들을 옮겨가며 경력을 쌓았다. 조금씩 월급이 올랐다. 130만 원을 가장 높은 월급으로 막내 작가 생활을 끝냈다. 그리고 공중파 아침 방송으로 입봉을 했다. 드디어 내 대본을 쓰는 서브작가가 됐다. 진정한 지옥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