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Jun 06. 2019

좌우명

#003


 투명해지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투명 인간이 되어 은행을 털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고요. 존재의 무게를 덜고 싶었달까요.     


 우리는 매 순간 어떤 형태로든 상호작용을 하죠. 들이쉬고 내쉬고 만나고 헤어지고 떠났다가 돌아오면서요. 그러면서 어떤 흔적들을 남길 겁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생각했어요.

 ‘아, 흔적을 지울 수는 있어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는 없구나.’     


...


 서로가 서로에게 개입하고, 길들거나 물들면서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순간들. 얽히고설켜 모든 존재를 다음으로 굴리는 거대한 힘. 그 압도적인 연결을 떠올리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거기에 무엇을 보태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투명해지고 싶었는데, 늘 선명하기만 했죠.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요. 나는 투명하지 않고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 그 영향을 최대한 줄여보자고요.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것도,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 것도, 필요 이상의 소비를 경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통과 착취와 슬픔이 줄어들기를 바라요. 모든 것이 자주 행복하길 바라요. 존재의 끝에 너무 많은 발자국이 남지 않기를 바라요.      


 해 끼치지 않는 삶은 요원할까요.     

 모든 순간에 어느 한구석을 빚지고 살아갑니다. 미처 깨닫지 못할 때라도.



작가의 이전글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