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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n 04. 2019

여름

#002


 오렌지는 좋아하지만 오렌지 주스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이는 못 먹지만 오이 비누는 좋아해요. 여름은 제게 그런 계절입니다.     


 부쩍 길어진 해를 느끼면서 여름, 여름인가, 여름이구나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여름을 굴리다가요, 아리송해졌습니다. 여름은 언제를 말하는 걸까요? 유월부터 팔월까지를 가리키는 걸까요? 혹은 두 번째 계절을 말하나요? 그것도 아니면 뜨겁거나 습하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들을 모아 부르는 걸까요.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만 여름이 되나요? 혹은 이 중 무엇이든 여름이 될 수 있나요. 여름은 누구를 부르는 이름인가요.     


 수많은 여름과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을 보냈습니다. 청량한 바다, 뜨거운 하늘, 하얀 셔츠, 펄럭이는 머리카락, 와글와글 웃음소리, 유리잔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물방울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여름날을 떠올리자니 그 모두를 여름이라 묶어 불렀던 지난날이 무심하게 느껴집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이젠 어떤 이름으로 다가오는 계절을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혹시 오늘의 미안함은 까맣게 잊고 여름, 이라고 다시 뭉뚱그려 부르게 되지는 않을까요. 눈앞의 여름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가능하다면 다정하게 많은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요. 가끔, 잊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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