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가장 최근의 바다를 떠올리려고 했는데, 엉뚱하게도 얼굴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바다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바다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 없어요. 아마도 익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딱히 애쓰지 않았는데도 늘 바다와 가까이 살았습니다. 할머니 댁은 이차선을 건너면 항구가 있는 거제도의 작은 마을이었고요, 고등학교에선 옥상에 오르면 곧바로 만(灣)이 보였습니다. 대학을 다닐 땐 일주일에 다섯 번쯤 지척의 바다로 산책을 갔어요. 해양 실습이란 걸 하느라 일주일 내내 배를 탄 적도 있죠. 그런 기억을 쌓다 보면 처음이란 건 아무래도 희미해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애에겐 또렷하고 아름다운 바다의 기억이 있었던 겁니다.
(...)
그 애는 아주 큰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웬만해선 사는 지역을 벗어나기 힘든 곳이었고요. 바다는 아주 특이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어쩌다 바다 얘기가 나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를 떠올리느라 왼쪽으로 굴러간 까만 눈동자가 눈부시게 반짝였던 걸 기억합니다. ‘피어난다’는 건 이런 때 쓰는 거구나 싶은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애가 처음 본 바다를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아무런 설명도 필요치 않은 표정이었거든요.
어떤 처음은 아주 특별합니다. 그런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처음이라는 말을 만들었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