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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n 20. 2019

버스

#009



 버스를 좋아해요. 글을 읽으면 멀미가 나고, 음악을 듣기엔 시끄러워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자리에 박혀있어야만 하는 그 시간을 좋아해요. 작은 창문에 들러붙어서 흙먼지와 바람을 들이마시고, 비 오는 날에는 대각선으로 달려가는 물방울을 쓰다듬는 걸 좋아해요. 살짝 구부러져 쏟아지는 햇살과 덜컹이는 느낌을 좋아해요. 흠뻑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와  스쳐가는 풍경을 좋아해요. 창밖과 나를 번갈아 보게 되는 그 공간을 좋아해요.     


 언젠가 온종일 버스를 탄 날이 있습니다. 부산을 떠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매일 같이 타던 24번 버스는 두 계절을 건너는 동안 제법 바뀌어 버린 풍경과 여전히 익숙한 이름의 정류장을 지났습니다. 더워서, 추워서, 혹은 권태로운 하루가 지겨워서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늘 내려야 했던 정거장을 지나쳤습니다. 기분이 묘했어요. 가본 적 없는 다음 정거장은 지나온 것과 다를 것 없는 풍경들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정거장인 백운포에서는 내리자마자 짠 내가 났어요. 아마도, 그해 처음 보는 바다였습니다. 한동안 종점에 멀뚱히 서 있다가 그곳에서 가장 멀리 가는 노선의 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덜걱대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두 시간을 채 못가 다음 종점에 닿았어요.      


 처음엔 목적지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딘가로 향하지 않아서 참 좋다고요. 그런데 두 번째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나는 돌아갈 곳을 향하고 있더군요. 목적 없는 나는 돌아갈 곳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항상 돌아왔어요. 어디로든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었다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버스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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