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혁백
이번에 소개할 책은 임혁백 교수님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 아테네에서 21세기 한국까지, 민주주의 연대기>입니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 임혁백 교수님은 학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올해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많은 고생을 하셨죠.
기본적으로 글을 쓸 때 사람 이름이나 직업 뒤에 ‘님’자를 붙이지 않습니다만, 임혁백 교수님은 예외인 것이 바로 제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단순하게는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있고, 그 국민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는 체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는 참주정, 전제정, 절대주의, 독재, 전체주의 등을 경험하고 민주주의에 이르렀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보다 나은 제도는 없다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했는데요.
성별, 종교, 소득, 직업, 학력, 선호, 가치 등이 다른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현대사회에서는 갈등을 처리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민주주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절대적·실질적으로 옳은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을 처리하는 규칙과 과정에 해당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중요하고, ‘법에 의한 지배’, ‘법 앞의 평등’ 등이 강조되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주권자 개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주권자가 선출한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통한 대의민주주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회는 다양한 집단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대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대표되는 세상의 축소판, 즉 소세계(小世界)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국회에서는 어떤 집단은 과대대표되고, 어떤 집단은 전혀 대표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선출된 대표들이 주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주권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권력자처럼 행세합니다. 자연스럽게 많은 주권자가 정치와 정당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가장 훌륭한 요새는 백성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 백성들의 미움 사는 것을 개의치 않는 군주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라고 썼는데, 군주도 아닌 민주사회의 대통령이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기에 민주화를 이루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것 같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SNS 등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게 된 듯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소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정당정치는 실종되었고 포퓰리즘이 번성합니다.
결국 제도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나아가 만들어진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역시 아주 중요한데요. 그래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한 문장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임혁백 교수님은 2021년도에 출간된 이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하셨는데, 조만간 식사자리가 생기면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지 여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