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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Aug 26. 2024

침착할 수 없었던 그날

심장병을 오랫동안 관리하던 사랑이라는 말티즈가 있었다. 여러 번 폐수종 위기를 이겨낸 강한 아이다. 보호자님들은 자매였고, 사랑이를 아들처럼 키우셨다. 2~3주 간격으로 1년 반 넘게 봐서 사랑이와 보호자님들 모두 정이 많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재진 일이었다. 사랑이는 이미 심장병 말기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용도 하지 않고 있다. 털이 많이 자라 얼굴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다.     


“사랑이 지난 재진 이후에 호흡이랑 기침하는 것은 괜찮았나요? 기력이나 밥 먹는 것은요? 대소변도 별문제 없었지요?”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잘 있었다고 하신다.      


“그럼 매번 하던 대로 흉부 방사선, 신장 수치만 체크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채혈하기 위해 처치실로 사랑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유난히 채혈을 거부했다.      


“사랑아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얼굴을 가득 덮고 있는 털들을 옆으로 쓸어내리는데, 이게 웬걸...!     




한쪽 눈이 밖으로 1cm가량 완전히 튀어나와 있었다. 뒤로 연결된 혈관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광경에 혼비백산해서, 먼저 보호자님께 가서 언제부터 이랬냐고 여쭤봤다.      


“집에서는 안 그랬는데요..? 괜찮은 거죠..?”      


나는 즉시 안과 선생님을 찾아 뛰어갔다. 진료 중인 아이가 눈이 튀어나와 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마침 안과 교수님이 계셔서, 한번 보자고 말씀해 주신다. 나는 너무 마음이 급했는데, 교수님은 느긋하게 걸어가신다. 나만 발을 동동동 구른다.     


“에이 별거 아니네.”     


한 번 쓱 보시더니, 생리식염수로 눈 주위를 세척하고 말 그대로 ‘쑥’ 집어넣으셨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괜찮을 거라는 말씀과 함께 교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다. 사랑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하다.


다른 선생님들이 내가 이렇게 빨리 뛰어다닌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 항상 여유 있어 보이고 느긋해 보이는데 허둥대는 모습도 있다며 놀렸다. 

“저도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놀랐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히 눈에는 큰 문제없었고, 원래 내원 이유였던 흉부 방사선과 신장 수치도 괜찮았다. 잊지 못할 하루였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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