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반찬
토요일 아침 8시, 냉장고 야채칸을 열었다. 가지 세 개가 비닐봉지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내가 수요일 직장 동료가 텃밭에서 가꾼 거라며 가지를 얻어 왔다. 그 옆에 애호박 한 개는 목요일에 회사 동료가 시댁에서 가져왔다며 내가 받아왔다.
“이번 주말엔 좀 쉬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가지 꼭지 부분이 살짝 마른 걸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야채는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시간이 멈추는 게 아니다. 섭씨 2~5도에서도 세포 호흡은 계속된다. 수분은 증발하고, 엽록소는 분해되고, 비타민C는 하루에 약 5%씩 줄어든다. 특히 요즘처럼 무공해로 키운 채소는 농약 처리를 안 해서 세포벽이 약하다. 상처가 나면 그 부분부터 갈변이 빠르게 진행된다. 마트 채소보다 2~3일은 더 빨리 손을 봐야 한다.
프라이팬을 꺼냈다. 찜기도 꺼냈다. 지인들이 건넨 마음이 시들어가는 게 보이는데, 귀찮다고 미뤄둘 수가 없었다.
작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무렵이었다. 막내 누님이 직접 기른 무로 석박지를 담가 택배로 보내주셨다. 가족 모임에서 “맛있다”라고 한마디 했더니, 며칠 뒤 석박지가 택배 집 앞에 도착했다. 누님의 김치 냉장고에서 꺼내 보낸 거였다.
그런데 얼마 전, 냉장고를 정리하다 그 주황색 통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석박지가 그대로 있었다. 왜 여태 몰랐을까. 누님이 애써 담근 석박지를, 나는 통째로 버려야 했다. 그 통을 쓰레기봉투에 넣으며 든 생각. ‘이게 석박지를 버리는 건가, 관계를 버리는 건가.’
누군가 건넨 마음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 순간 관계도 시든다. 냉장고 깊숙이 방치된 석박지처럼.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가끔 누군가 “이거 먹어봐”라고 건네는 식재료 하나, 그걸 잊지 않고 챙기는 것. 그게 관계다. 식재료를 통해 관계를 본다.
가지부터 손봤다. 성인 손가락 세 마디 길이로 잘랐다. 그러니까 대략 7cm쯤 된다. 그걸 다시 4등분. 찜기에 물을 붓고 2분 30초만 쪘다. 3분을 넘기면 물러진다. 불을 끄고 뚜껑을 살짝 열어 김을 뺐다. 뜨거울 때 바로 찢으면 손만 델뿐,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5분쯤 지나 손으로 가지를 찢었다. 칼로 썰면 단면이 매끄러워서 양념이 안 밴다. 찢어야 결이 갈라지면서 맛이 스민다. 소금 한 꼬집, 후추 네다섯 번 갈고, 들기름 한 스푼. 양파는 얇게 채 썰어 넣고, 청양고추 한 개는 어슷썰기, 마늘은 편으로 썰어 섞었다. 사진을 찍어보니 유리 용기 안에서 가지가 윤기가 흐른다. 검붉은 가지 껍질에 참깨가 톡톡 박혀 있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했다.
찜기를 쓰는 이유가 있다. 가지를 그냥 볶으면 기름을 머금어서 느끼하다. 하지만 쪄서 만들면 칼로리는 줄고, 안토시아닌 같은 항산화 성분은 거의 그대로 남는다.
애호박은 더 간단했다. 반달 썰기로 썰었다. 두께는 5mm. 너무 얇으면 볶다가 흐물 해지고, 너무 두꺼우면 익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달군 팬에 아보카도 오일을 두르고, 호박과 양파, 마늘 편을 넣었다. 다진 마늘 반 스푼, 소금 두 꼬집. 중불에서 2분 30초. 호박이 반투명해지면 불을 끈다. 참깨를 뿌렸다. 사진 속 연두색 호박 위로 하얀 양파가 겹쳐지고, 참깨가 별처럼 박혀 있다.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으며 생각했다. 사실 아직 한 입도 안 먹었는데, 벌써 건강해진 기분이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반찬이 냉장고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그리고 더 든든한 건, 이 반찬을 만들며 지인들이 떠올랐다는 거다. 아내의 직장 동료는 얼굴은 모르지만, 텃밭에서 가꾼 가지를 보내준 마음이 고마웠다. 호박을 건네준 회사 동료에게는 뭘로 보답할까. 추석에 시골 다녀오면 어머니가 주신 과일을 좀 드려야겠다. 그들이 건넨 건 가지와 호박이 아니었다. “당신을 생각했어요”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메시지를 20분 만에 답장했다. 시들기 전에, 잊히기 전에.
관계는 야채와 닮았다. 신선할 때 챙기지 않으면 시들고,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영원히 보관되는 것도 아니다. 손이 가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가 건넨 무언가를 잊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냉장고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