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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경기"

마음의 공간

by 어니스트 정

바라던 회사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동료 간 친목을 위해 배구를 즐겨했다. 1년에 두 번 큰 대회를 나가고, 대회 한 달 전부터는 퇴근 후 2시간씩 연습했다. 나도 처음엔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코트 바닥의 미끄러운 느낌, 손목과 손바닥이 얼얼해질 정도로 이어진 서브와 리시브, 공이 터질 듯한 스파이크 소리까지, 모든 게 짜릿했다. 그런데 10년 동안 나는 늘 후보였다. 주전 선수들의 실력은 좋았다. 리시브는 정교했고, 세터의 손끝 감각은 정확했다. 나는 늘 그들 뒤에서, 벤치 위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지르고, 실수하면 같이 탄식을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저 자리, 나도 한 번만.’ 하는 갈망이 있었다. 그건 단순히 승부욕이 아니라, ‘나도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였다. 소속되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결국 같은 곳에서 자란다.


후보는 언제나 대체 가능하다. 누군가 다치거나 지칠 때, 잠깐 기회가 주어진다. 그 짧은 순간이 오면, 손끝이 떨린다. 공이 내게 오면, 숨이 막히고 몸이 굳는다. ‘실수하면 끝이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몇 번의 실수를 하고 나면, 금세 벤치로 돌아온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주전 선수들은 후보 선수들이 느끼는 무게를 모른다. 후보들은 한 점 한 점이 자기 존재의 증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실패하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나는 안 될까?’ ‘나도 저들만큼 노력했는데.’ 친목의 장이었던 배구가 어느새 평가의 장이 된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연차는 쌓였지만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주전들의 훈련 파트너로만 불렸고, 들러리처럼 느껴졌다. 올해는 핑계를 대며 훈련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대회에서 주전들이 줄줄이 다쳤다. 손가락 골절, 인대 파열, 허벅지 근육 손상.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은 다른 회사와의 친선 경기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주전들의 부상 덕분에, 드디어 내게 기회가 왔다. 10년 만에 주전으로 출전이라니. 몸은 긴장되었고, 초반에는 리시브도 불안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터가 내게 공을 띄워주었다. 블록 세 명이 시야를 막는 높이 쌓아 올리 벽 같았지만, 나는 블록 위에서 연타로 넘겼다.

세명의 블럭 수비 뚫기

스파이크를 내리꽂을 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공은 상대 수비의 진열을 흩트려 놓았고 찬스공으로 우리 코트로 넘어와 최기사님이 상대편 코트로 내리꽂았다. 비록 내가 내리 꽂지는 못했지만 찬스 볼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내가 팀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존재의 기쁨과 만족감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5게임 중 4게임을 뛰었고, 동료들의 응원에 시간이 흐르는지 몰랐다. 벤치에 앉아 있었던 나를 잊었고, 아직 벤치에 앉아 있는 후보 동료를 잊었다. 경기가 무르익을 무렵, 박 기사님이 발목을 접질리며 쓰러졌다. 동료들이 박 기사님을 에워싸며 걱정했다. 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내가 다음 대회 주전으로 나가게 될 수도 있겠는데?’ 한쪽 뇌는 걱정을, 다른 한쪽 뇌는 희망을 속삭였다. 인간의 마음은 참 복잡하다. 이기심과 연민이 한 몸에 함께 산다.


집에 돌아오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박 기사님이 걱정되었지만, 나는 오늘 주전으로 뛰었고, 팀에 도움이 되었다. 예전엔 후보로 잠깐 나갔다가 실수하고 돌아와 자책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내에게 “오늘은 내가 집안일 다 할게”라며 설거지를 자처했다. 기분이 가벼웠다.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배구 선수로서의 존재 열등감이 잠시 비워진 느낌이었다. 주전 선수들도, 후보 선수들도 결국 같은 마음이었다. 코트 위에 서면 모두 자기 몫을 다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내가 그 자리에 서보니, 주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들도 몰랐던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배구는 친목을 위한 경기니까 실수해도 괜찮아요.”라는 말이 진심으로 닿으려면, 배구가 점수를 쌓는 경기가 아니라 마음을 이어주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누가 실수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서로의 긴장과 두려움을 알아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서브가 빗나가도, 리시브가 흔들려도, 누군가 옆에서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다’라는 묵묵한 신뢰가 있다.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실수를 해도 웃을 수 있는 경기를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불완전함을 품을 수 있는 심리적 여백. 그 여백 속에서야 비로소 배구는 ‘이겨야 하는 경기’가 아니라 ‘서로를 안심시키는 경기’가 된다. 우리의 배구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웃기 위해서’하는 “괜찮아!”가 더 많이 들리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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