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음식 '굴' 이야기
“어제 굴 무침을 해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요.”
동료의 한마디에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한다.
요즘 퇴근하면 기진맥진이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저녁은? 배달을 시키거나, 반찬가게 들러서 밑반찬 두어 개 집어 온다. 식탁이 아니라 현관문 앞에서 먹는 저녁들. “피곤해서”라는 핑계가 입에 붙었다.
그런데 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 보신이 필요한 때구나.
제철 음식이라는 게 신기하다. 몸이 회복이 필요한 순간에 딱 맞춰 나온다. 여름 땀 흘릴 때 수박이 나오고, 가을 건조할 때 배가 나오듯이. 겨울 초입 기운 빠질 때 굴이 나온다. 자연이 보내는 회복 신호 같다.
퇴근길에 마트를 들렀다. 15cm 원형 기둥에 담긴 굴 한 통. 8,000원인데 회원 가입하면 6,000원. 2,000원 할인에 망설임 없이 가입한다. 아내도 굴을 좋아한다. 베이컨 김치볶음밥이 아들과 딸이 ‘합(合)’이 맞는 음식 메뉴라면, 굴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합(合)’이 맞는 음식이다. 굴은 날씨 쌀쌀할 때쯤 해 먹으면 좋다.
집에 와서 굴부터 손질한다. 굴은 노로바이러스를 조심해야 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노로바이러스를 퇴치한다. 봉지에 담긴 물을 붓고 채반에 굴을 담아 흐르는 물에 두세 번 씻는다. 그리고 소금 넣은 끓는 물에 20~30초 데친다.
오늘 메뉴는 굴전과 굴 무생채무침. 데친 굴에 감자 전분을 살짝 입힌다. 계란을 풀고 소금, 후추로 간하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는다. 재료 준비 끝.
가스레인지에 3구짜리 계란 프라이 팬을 올린다. 한 번에 세 개씩 구울 수 있어 좋고 힘들이지 않아도 10년 차 주부가 만든 것처럼 모양새가 그럴싸하게 나온다. 아보카도 오일을 두르고 계란물을 원형 팬에 바닥이 덮일 만큼 붓는다. 그 위에 굴 2~3개를 올리고. 청양고추도 1~2개 데코레이션 해준다. 1~2분 지나 바닥 면이 익으면 뒤집고, 1분은 잔열로 익힌다. 굴은 한번 데쳤기 때문에 너무 많이 익히면 굴이 주는 풍미와 향을 잃을 수 있다.
팬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고 굴의 땡땡함이, 내가 식탁으로 다시 돌아온 걸 실감 나게 한다.
무생채에 데친 굴을 넣어 버무리고 삶은 양배추도 곁들여 식탁을 차린다.
아내가 퇴근했다. 식탁을 보더니 눈이 커진다.
“나도 아침에 굴 먹고 싶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한 게 아니다. 제철이 다시 식탁으로 부른 거다. 겨울 초입, 쌀쌀한 날씨, 자연이 보낸 신호를 기운 빠진 우리 몸이 동시에 받은 것이다.
첫 입을 베어 문다. 굴의 진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정말 맛있다.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는 건, 몸이 필요로 했다는 증거였나 보다. 2025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해 제철 음식으로 위로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