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과 행동 사이
아침 거울을 보며 다짐한다. “오늘은 꼭 할 거야.” 하지만 저녁이 되면 “내일 하자”로 끝날 때가 있다.
의욕이 넘치던 순간도 잠깐, 결국 미루는 나를 발견한다. 당근 네 개가 주방 한편에서 3일째 시들어가는 동안, 의욕과 행동의 순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줄곧 의욕이 행동의 선결 조건이라 믿었다. 마치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열쇠가 필요한 것처럼, 행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욕이라는 열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내킬 때 해야지”라는 의식이 은연중 강했다. 하지만 『필링 굿』이라는 책은 내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불행히도 틀렸다. 의욕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물이 즉시 올라온다.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는 사람은 흔히 의욕과 행동을 혼동한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어리석게 기다리기만 한다. p. 178~179”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비유는, 왜 내가 그토록 많은 일을 미뤄왔는지 설명해 주었다.
주방 한편에 놓인 당근 네 개는 내 우유부단함을 조롱하듯 3일째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당근 라페를 만들기 위해 채칼과 기계까지 준비했지만, ‘당근을 채 썰고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라는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었다. 아내는 맛있게 먹기만 하고 만들지 않는다며 투정도 부려보지만, 그것 역시 행동을 미루는 또 다른 변명일 뿐이었다.
연구 결과 보고서는 더 큰 산이다. 다양한 대상층의 인터뷰를 질적연구로 도출해 내는 일은, 마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한 대상층만으로도 벅찼는데, 여러 대상층의 다른 질문들을 어떻게 엮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3주 후가 제출 기한이라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마음만 조급하고 ‘기분이 내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나는 작은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의욕을 기다리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해 보는 것이다. 당근을 씻고, 채칼을 꺼내고, 노트북을 켜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펌프에 붓는 첫 마중물이 될지도 모른다.
마중물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펌프도 물을 끌어올릴 수 없다.
행동이라는 마중물을 부어야만 의욕이라는 물줄기가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을 검증해 보려 한다.
오늘 저녁, 나는 과연 이 가설을 입증할 수 있을까? 정말로 행동할 때 의욕이 생길까?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