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겸손
충분히 노력했다면 이제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표현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고, 알아보지 못하면 액자 없는 예술품이 된다. 자기를 증명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커리어 브랜딩 글쓰기』 p.35.
책에서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인정’ 꼭 받아야 할까? ‘왜 꼭 인정받아야 할까?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책임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도 관리자에게, 동료들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교회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는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인가?’
‘인정은 받고 싶으나 인정받기 위해 갈구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이런 내적 갈등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오랫동안 겸손을 ‘자신을 낮추는 것’,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생각의 뿌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교적 문화 배경이다. “능한 매는 발톱을 감춘다.”라는 속담처럼, 우리 문화는 전통적으로 겸양을 미덕으로 여겼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건방지다’ 라거나 ‘오만하다’라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둘째, 종교적 영향도 있다.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곧 신앙의 덕목이라고 믿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 6장 3~4절의 말씀은 자기표현을 주저하게 했다. 선한 행위는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 때로는 나의 공적인 기여나 성과를 말하는 것조차 고민하게 되었다.
셋째, 어린 시절의 경험들도 영향을 미쳤다. “자랑하지 마라”, “겸손해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었다. 칭찬받을 일이 있어도 “별거 아니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반응이라고 학습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겸손’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해했던 ‘잘못된 겸손’과 달리,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겸손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낮은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는 내면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경적 겸손의 시작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비하나 과소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마음이다. 나의 성공이나 성과가 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기회 덕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의 참된 의미는 사람들이 보라고 선행을 하는 외식적인 동기를 경계하라는 말씀이었다.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라는 가르침이다. 나의 노력과 성과를 알리는 것이 단순히 나를 드러내려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이룬 선한 결과라면,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지혜롭게 표현하는 것이 ‘액자 없는 예술품’으로 남지 않으면서도 성경적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과 인정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다. 문제는 그 욕구 자체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인정을 추구하느냐이다.
자신의 노력과 성과를 적절히 알리는 것은 자기만족을 넘어 더 나은 관계와 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자신의 기여를 알리는 것은 팀의 성과 향상과 개인의 성장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고, 가정에서도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표현할 때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그 동기가 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만함과 건강한 자기표현은 분명히 다르다. 오만함은 과장된 자기 평가, 다른 사람 폄하, 피드백 거부로 나타나지만, 건강한 자기표현은 사실에 근거하고, 타인의 기여를 인정하며,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나의 능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기억하며, 그 재능을 선하게 사용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액자 없는 예술품”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해온 일들, 쌓아온 경험들, 기여한 바들을 적절히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만함이 아닌 진정한 겸손의 자세로, 계속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나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타인을 섬기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결국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성경적 겸손함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정확히 알아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