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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교윤 Nov 21. 2024

치욕스러운 경험. 영어를 못해서.   

Do you have food for lunch?

대학생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배낭여행을 나는 여러 번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 었나 싶다. 태국 3번, 인도, 티베트, 중국에 갔다 왔다. 첫 배낭여행은 가장 친한 남자 사람 친구와 갔다. 그 친구 덕에 배낭여행의 시작을 경험하게 되었다. 가장 친간 남자 친구가 짜는 일정에 나는 따라만 가면 됐다. 가이드가 따로 없었다. 관광버스와 여행 단체 손님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가지 않는 패키지여행과 다름없었다. 10박 11일의 긴 여행 일정 동안 힘들어서 징징 거리기도 했지만 남사친은 인생에서 화를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웃으며 받아줬다. 아무튼 이번 배낭여행 덕에 배낭여행 덕후가 된 마냥 무모한 용기로 다음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두 번째 여행은 사촌 여동생과 함께 했다. 지난 여행에서의 남사친의 역할을 이번엔 내가 했다. 여행일정을 짜고 숙소를 정하는 일은 꽤 설레었다. 사촌 동생은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나에게 모은 것을 의존했다. 여기서 의존이라 함의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언어였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한국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영어를 충실이 수업받은 정도이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 번역어플이 있는 줄도 몰랐다. 오로지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만이 배낭여행에서 소통을 주도했다. 다행히도 배낭여행에서 꼭 써야 하는 말은 물건을 살 때, 길을 물을 때,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숙소에 들어갈 때정도이다. 이 정도는 몇 문장 안되니 가볍게 구사했다. 여행이 이렇게 무난하게 진행된다면 배낭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겠지. 영어를 못해 식은땀을 흘린 적도 많다. 특히, 외국인과의 전화 통화이다. 오로진 전화기로 건너오는 상대방의 음성만을 듣고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윤선생 영어 듣기를 한 덕에 영어 듣기는 80점 이상 받는 수준이다. 이것은 성우의 영어 듣기 음성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실제 상황에서의 외국인 전화 음성은 정말 난해 했다. 특히 영어권이 아닌 동남아이사 사람의 영어는 더 어려웠다. 이것도 핑계다. 그냥 영어 듣기도 잘 안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잘 못한다.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는 전화, 미리 예양 해둔 숙소를 확인하는 통화, 연착된 기차를 확인하는 상황 등의 예상 친 못한 일에서는 늘 식은땀이 흘렀다.  


여행 중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사촌 동생과 방콕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역 버스와 배를 타고 푸껫으로 갔다. 여기까지는 언니로서 책임감을 무장하고 어떠한 상황이 와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신청한 여행사를 검색해 보니 외국인이 대부분이란다. 괜찮다. 우리끼리만 잘 놀면 되니까. 여행사 직원이 친절했고 다른 곳보다 조금 저렴했다. 사촌 동생과 나는 시간에 맞춰 투어를 시작하는 장소에 갔다. 정말 외국인들 밖에 없었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지만 허우대를 월등했다. 늘씬한 키에 그을린 백인은 정말 간지 난다. 누더기 옷 같은 태국 여행자들이 많이 입는 천 조각을 걸쳐도 멋지다. 함께 온 팀끼리 모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어로. 그들의 모국어가 영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어로 나누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국어를 쓰는 우리 둘은 그들 사이에서 꿀리지 않도록 한국어로 신나게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스노클링은 오전, 오후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오전 투어를 끝내고 돌아와 우리는 점심은 간단히 사 먹고 일찍이 오후 투어를 위해 투어 모임 장소로 갔다. 조금 뒤 오전에 함께 투어를 한 외국인 중 한 팀이 와서 우리 옆에 앉았다. 오전에 한번 봤다고 익숙해진 얼굴, 대화는 나눈 적 없지만 눈을 마주치니 친근함이 들었다. 나는 용기 내어 갈색머리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Do you have food for lunch?

외국인은 이 말을 듣고 3초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후에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옮기더니 가방에서 주점주점 빵봉지를 꺼냈다.

"Oh. yes. yes." 하며 빵봉지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잘못 말했다는 것을. 나의 의도는 '점심은 맛있게 먹었냐?'였는데 '먹을 것이 있냐?'로 받아 드린 것이다. 나는 졸지에 먹을 것을 구걸하는 동양인이 되어 버렸다. 영어를 못하는 사촌 동생에게 지금껏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자신감 넘치게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빵을 받았다. 바로 먹지 않으면 갈색머리 외국인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감사의 인사를 하고 웃으며 먹었다. 나의 의도를 잘못 전한 것은 나만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치욕스러웠다.


이 일이 있었던 배낭여행을 끝으로 영어 공부를 했을 것 같지만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여행을 더 갔다 왔지만 영어 실력은 그대로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도 나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하긴 했었지만 꾸준히 하지 못했고 실력 상승 전에 그만두었다. 대부분 아직 영어 공부에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영어 공부의 필요성은 알지만 제대로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20년인 지난 지금도 두 마디를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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