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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교윤 Nov 21. 2024

치욕스러운 경험 2. 영어를 못해서.

초등 교사가 되었다. 신규교사의 명찰을 달고 발령받은 학교에 출근한 지 한 달이 되었던 때였다. 신규 교사의 무모한 열정으로 나는 EBS 최고의 영어교사 프로그램을 찍게 되었다. 


6 학급 작은 시골학교다. 6 학급이라 함은 한 학년이 1 반씩 총 6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 교장 선생님을 1~6학년 선생님들은 교장실로 불렀다. 

"내 딸 친구가 EBS 프로그래 피디인데 우리 학교 텃밭을 활용한 영어 수업을 촬영하고 싶다고 해요. 우리 학교 사이트를 봤나 봐요. 텃밭을 중점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연락이 왔어요. 수업해보고 싶은 사람 있나요?" 

선생님들은 서로서로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발령받은 지 한 달 된 내게 제안을 했다.

"정교윤 선생님, 한 번 해보실래요?" 

선생님들은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좋은 생각이라며 환호했다. 뭐든지 할 수 있다! 해보겠다는 신규교사는 제안을 받아 드렸다. EBS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영어를 못하는 교사였다. 


우리 학교에는 외국인 교사가 있었다. 제이슨이라고 키가 크고 젠틀한 남자 선생님이다. 한국말을 한국사람처럼 잘해서 늘 주목을 받는다. 제이슨과 함께 수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제이슨에게 달려갔다. 

"제이슨, 텃밭 관련해서 영어 수업해야 해요."

"네, 좋아요. 해봐요. 선생님이 시키는 거 열심히 해볼게요." 

나는 제이슨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거란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수업 시나리오를 짜는 건 교사 몫이다. 외국인 교사는 원칙상 보조 교사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제이슨이 수업을 주도하고 있었기에 그런 기대해본 것이다. 제이슨에게는 열심히 보조하겠다는 대답을 듣고는 지금부터는 한 달 된 초등교사가 모든 것을 계획, 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교감 선생님 소개로 영어 수업을 잘하시는 선배 선생님을 알게 되어 수업 내용과 흐름을 짜는데 도움을 받았다. 한 달간의 수업 준비 기간을 가긴 후 드디어 촬영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촬영팀이 도착하여 교실에 카메라를 세팅했다. 시작 전에 가슴이 마이크를 달고 줄을 옷 속으로 넣어 바지 뒤쪽에 기계를 장착했다. 텔레비전에서 배우들이 달고 있던 그 마이크였다. 긴장은 가슴에 묻고 수업은 교실에서 시작했다. "Hello,  everyne!"이 내 첫 대사이다. 제이슨이 내 말을 받아 반 아이들에게 날씨를 물고 난 후 텃밭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텃밭에 도착해서 식물 제배 관련 영어 노래를 텃밭에 서서 부른 후, 게임을 진행했다. 수업이야 시나리오대로 하면 되기에 할만했다. 영어 문장도 열심히 외운 것이고 제이슨이 있기에 부담이 덜했다. 무사히 수업 촬영을 마치고 내 치욕스러운 경험은 후에 일어났다.


수업 촬영은 시나리오를 보고 암기했던 문장들을 실감 나게 말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괜찮았다. 피디는 교실에서 제이슨과 수업 준비를 함께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했다. 내 책상에 둘이 나란히 앉아 화면을 보며 수업에 대한 의논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이슨은 영어로, 나는 한국말로,,, 한참 촬영을 하다 피디가 중지시켰다. 

"선생님, 제이슨은 영어로 선생님은 한국말로 하니 좀 이상해요." 

"저... 영어 잘 못하는데..."

치욕스러웠다. 아는 문장을 동원하여 영어로 소곤대면서 다시 촬영했다. 실제 방송 영상에서 보면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초등교사인데 영어를 그렇게 못합니까? 네... 우리 학교 나를 포함한 젊은 선생님들은 영어 공부 할 겸 제이슨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 나는 한국말로 한다. 막 써야 하는데 나는 부끄럽다. 이게 우리나라 입시 영어 교육을 받은 부작용 표본이다.   


이런 치욕을 겪었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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