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항공사 승무원으로 하늘에서 보낸 6년

내겐 완벽했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by Giagraphy
너무 잘 맞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영원히 하고 싶진 않았다.



20번이 넘는 실패 끝에 합격한 중동의 메이저 항공사.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승무원 5천여 명 중 한국인은 70명 남짓,

내가 합격했을 땐 30명 가까운 한국인을 한꺼번에 채용한 시기였다.
일본에서 면접을 봤던 터라 동기 대부분이 한국인과 일본인이었고,

덕분에 트레이닝은 수월했고 적응도 빨랐다.





그곳의 계절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여름엔 기온이 50도까지 치솟아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었고,

살갗을 에는 듯한 햇빛 속에서 사막의 건조함과 반도의 습기가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겨울은 한국의 봄이나 가을처럼 선선해, 여름에 못 했던 외부 활동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놀거리나 구경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한 달 중 절반 이상을 비행하며 보내니 베이스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참을 만했고, 오히려 짧은 머무름이 단조로움을 덜어주었다.





비행은 생각보다 더 내 성향에 잘 맞았다.

전 세계에서 온 승객들을 맞이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순간을 마주했다.


메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평생 모은 돈으로 드디어 성지에 다녀왔지만,

비행 중 잠든 뒤 끝내 눈을 뜨지 못 하셨던 할머니 손님.


또,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비행기를 타는 손님들은 안전벨트 채우는 법조차 몰라,

세이프티 데모킷에서 샘플 벨트를 꺼내 일일이 알려드려야 했다.

그중 한 명은 화장실 문 여는 법을 몰라 그 앞에서 변을 보기도 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회사라, 가끔 탑승한 한국인 승객들은 나를 보며 반가워했고,

감사하다며 직접 그린 그림을 건네줬던 여대생 손님도 있었다.


어느 날은 한 아라빅 손님이 비즈니스석에 앉자마자

“예전에 제 아기와 놀아줬던 분 맞죠?”라며

무려 2년 전의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매일 하기하는 손님들이 해주는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와,

매순간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한 나를 예쁘게 봐준 손님들은

이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내 업무는 비행 전 브리핑부터, 목적지에 도착해 모든 승객이 내린 후, 포스트 체크까지였다.

스케줄표에는 이 시간이 분 단위로 찍혔고, 급여도 그에 맞춰 정확히 산정됐다.
이외의 시간에는, 회사로부터의 연락은 일절 없었다.
온과 오프가 완벽히 분리된 직업.
그 선명한 경계 덕분에, 일할 땐 온전히 집중했고 쉴 땐 온전히 쉴 수 있었다.


부자 항공사로 유명한 우리 회사의 복지는 그 모든 경험을 더 풍요롭게 했다.
으리으리한 숙소, 회사 병원과 전액 보험 진료, 전 세계 특급 호텔과 체류비, 1년에 30일 마음대로 쓰는 연차, 가족과 친구까지 쓸 수 있는 최대 90% 할인 항공권은 비지니스석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좋은 조건’이 아니라, 나에게는 완벽 그 자체였다.





비행이 끝나면 회사 캐리어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사복과 개인 캐리어를 끌고 '손님'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려둔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고 빙하 위를 걸었고,

이비자에서 하루종일 클러빙과 수영을 했고,

우유니 사막에서 하늘 속에 있는 듯한 멋진 사진을 찍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선 드레스를 차려입고 공연을 봤고,

카파도키아에선 열기구를 타고 떠오르는 해를 맞았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내 성향과 업무 환경, 일과 삶의 균형, 안정적인 혜택, 그리고 넓어진 세계.
거슬릴 것도,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평생 직업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동료도, 승객도, 목적지도 매번 바뀌지만, 내가 하는 일은 놀랄 만큼 같았다.
매일이 새로우면서도, 지루했다.
머리 쓸 일 없이 육체만 움직이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학창시절 쌓아온 것들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스스로 발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성과 달리 몸은 익숙한 챗바퀴를 계속 돌고 있었고, 불만이 없으니 움직일 동력도 생기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편안함과 변화 사이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오래 서 있었다.
떠날 용기를 내기 전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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